26화 다양한 독서로 글감을 수집하라

PART 3 다양한 글감을 찾아라

by 집현전 지킴이



독자가 글을 읽어주지 않으면 작가로서는 설 자리가 없다. 작가는 글감을 끊임없이 수집하고 가공하고 다듬어야 한다. 독서는 글 쓰는 일에도 필요하고, 또 책을 읽어야만 목적한바 글을 쓸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 가운데 완전무결하게 새로운 것이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100% 완전히 새로운 거라고 주장한 것이라도 찬찬히 생각하고 살펴보면 기존의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이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인용한 자료도 기존에 있던 것이다. 그러기에 무(無)가 아니라 유(有)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 가능하다고 하겠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의 씨앗인 글감이 필요하다. 그러자면 평소에 책이나 칼럼 등 자료들을 읽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모아둬야 한다. 간단한 메모에서부터 인용문까지 채집해 보관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아무런 준비 없이 글을 쓰고자 한다면 맨땅에 헤딩하듯이 난감한 일에 부닥치고 말 것이다. 독서를 꼭 책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 신문이나 방송, 영화, 인터넷 기사 등등 찾아보면 의외로 많은 자료를 주위에서 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자료를 찾아보면서 필요한 부분은 반드시 기록해 둬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다. 글감 수집에 대한 집념이 없으면 주위에 널려 있는 자료들이 눈에 띌 리가 없다. 명마(名馬)라도 자신을 알아봐 주는 주인이 있을 때라야 명마로서 빛을 발할 수 있듯, 아무리 좋은 글 재료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제일 좋은 글감 수집 방법은 책을 다양하게 읽는 것이다. 책은 한 분야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모아놓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내용을 파악하는 데 좋다. 그리고 하나의 책을 독파했다면 이어서 다른 책을 연결 지어 읽을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부분이 해결됐고, 어떤 부분이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는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잘하면 또 하나의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글쓰기30.jpg 사진=픽사베이


처음부터 목적의식을 갖고 독서를 하는 게 좋다. 책을 읽다 마음에 와닿거나 눈길을 끄는 문구가 있으면 메모로 남겨야 한다. 메모는 산발적으로 즉흥적으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항목별로 분류해서 하면 나중에 쓰임새가 좋다. 메모가 뒤죽박죽 섞여 있으면 사용 가치가 떨어진다. 마치 온갖 옷들이 뒤엉켜 쌓여 있어 필요로 하는 옷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고나 할까. 좋은 정보를 분류해놓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그것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대개는 독서로 시작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책 읽기가 글을 쓰겠다는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메모는 기존의 지식을 수집하는 과정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한다. 독서를 통한 메모가 쌓이면 자기 나름의 식견이 생기고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면 자연히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것을 기존 내용과 버무리면 좋은 한 편의 글이 나온다. 잘하면 베스트셀러가 탄생할 수도 있으리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독서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책을 펼쳐 들기가 싫고 힘들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게다가 메모까지 한다는 게 여간한 결심이 없고서는 어렵다.



사실 메모는 내용별로 정리하고 분류해야 가치를 갖는데, 그러지 않으면 메모는 하나의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글쓰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하면 독서를 통한 메모는 빛을 발한다.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 좋은 글을 생산하고자 하는 결단,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 등등이 있으면 독서와 메모, 글쓰기는 어렵지 않게 해나갈 수 있다. 메모나 글쓰기는 누가 시킨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으로 상당한 이득이 생긴다고 해도 당사자가 하기 싫으면 불가능하다. 대다수 저자들은 본인이 좋아서 책을 읽고 메모하고 글을 쓴다. 이런 사람들에게 ‘지나친 책 읽기는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쉬엄쉬엄 하라’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독서광’인 그들은 자기가 소망하는 대로 밀고 나간다.

글쓰기를 위한 독서를 생각한다면, 아마도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런 방법으로 독서하고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다산은 애당초 자기 주관을 세우고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메모하고 그것을 편집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덧붙이는 식으로 책을 썼다. 책을 읽지 않고 자기 주장을 펼친다면 어딘지 모르게 엉뚱할 수 있고, 아니면 기존 내용을 부연한 것일 수 있기에 기존에 나온 글이나 책을 섭렵할 필요가 있다. 글을 쓰기 위해 독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발표한 내용을 파악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쓴다면 그 글은 가치가 떨어지고 독자로부터도 호평을 받지 못할 것이다.



독서는 글감을 모으는 방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주장을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존에 나온 것을 알아야 다르게 보고 생각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남의 말을 흉내 내는 앵무새를 두고 말을 잘한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잘 따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남이 주장하거나 이야기한 걸 중언부언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글로서 가치가 없다. 독자들한테 이런 글을 내어놓는다면 이건 하나의 ‘문자 공해’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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