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 간 여편네의 고양이 인연
유약해서 아직 미쳐버리지 않은 게 용한 옛 5층 여편네 기억을 엿보았어.
마침 이사하느라 고되었는지 새벽까지 꿀잠을 자길래 1층마 잠시 마실 나간 틈에 다녀갔지.
여편네의 고향은 남쪽 끝자락 바다가 보이는 작은 도시래. 사시사철 따뜻해서 식민지 적에 왜놈들 집이 많았던 곳이었다지.
난 고양이라면 앙숙이니 몸서리치지만 이 여편네는 웬걸 고양이만 만나면 고향 친구 만난 듯이 반가워서 얼싸안을 기세야. 놀래서 눈 동그래진 길냥이들이 피해 갈 정도였지.
어린 시절 고양이가 여편네 고향 집에 들어가서 살기 시작한 게 국민학교 6학년 올라갈 때였다나 봐. 집고양이 암컷이 길냥이 수컷이랑 눈 맞아서 길냥이랑 살다가 아들 고양이랑 들어온 지 며칠 만에 아들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어 버렸어. 아들 고양이 몸은 여편네 오라비 손에 수습되어 그 집 무화과나무 아래 묻혔다지. 거기 지박 고양령 1호지 아마.
그런 후에 여편네 어미의 친정아버지가 시골에서 급사해서 황망한 여편네 어미가 6개월간 정신줄을 놓았어. 그 바람에 여편네가 국민학교 다니던 어린 계집이지만 가족들 밥 챙기는 것도 도왔다지.
어려서 영특하긴 했지만 눈물 많고 유약했던 여편네는 혼자 울기를 멈추고 죽어라 공부했대. 다른 이들이 무시하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버텼다네. 그 와중에 마음을 내준 고양이가 발 사이를 오고 가고 그 감촉에 그나마 온기를 느끼며 살아남았나 봐.
여편네 어미도 몇 달이 지나서 온전하지 않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자식들과 더부살이 고양이까지 챙기기 시작했어.
아들 고양이 잃고 어미는 곧 길냥이 수컷 사이에서 또 동생들을 봤어. 4마리 새끼 고양이가 작은 방 한켠에서 겨울나고 봄에는 마당에서 강제로 나가서 살게 되었다지. 이런 그나마 다행이네.
고양이가 한집에서 제대로 살면 우리네는 다가설 수도 없었을 텐데... 그때부터 집고양이지만 길냥이와 어울려서 여편네는 살아왔더구먼.
자식들 여럿이지 밥 주는 것도 힘들어진 여편네의 어미는 이 집 저 집에 새끼 고양이들 나눠주려다 실패했어. 할 수 없이 어미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들 각자 살 곳을 제 발로 찾아가도록 등 떠밀었대.
그러고 어미 곁을 못 떠난 아들 고양이 하나와 살던 이제는 나이 많아진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또 보았네. 그 바람에 여편네 어미가 고양이 장수에게 고양이 모자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 고양이들을 넘겼다지.
세월이 지나 자식들 출가하고 독립하면서 먼저 억지로 떠나보낸 고양이들한테 미안했던 여편네의 어미는 가끔씩 찾아오는 길냥이들에게 밥 주는 걸 잊지 않았고 꾸준히 길냥이들 식당을 했다지.
몇 해 전 힘들어서 여러 병으로 쇠약해진 몸으로 암에 걸린 여편네의 어미는 중환자실에서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기고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어.
치료받던 병원에서 숨 쉬기 힘들어 숨차하던 날에 아들에게 한 말이 고양이들이 병실에 찾아왔다지. 하나하나 세더니 쉰 두 마리나 찾아왔다더군.
정신없던 때니 사실인지 아닌지는 자식들은 모르지만 맞는 말이야. 인사하러 왔던 게.
고양이들 혼이 떠나는 곳이랑 인간 영혼 가는 곳이 다르니 이승에서 마지막 보내는 길이라 모두 갔던 거지. 살아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거라 고양령들이 간곡하게 상제에게 부탁해 하루 말미 얻어서 갔다 온 거라더군.
내 식량이었던 여편네지만 딱하군 그래. 고양이들 힘이 강한 1층에서 그래도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군. 1층마, 2층마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5층 돌아오면 너무 힘들게 하지는 않아야겠군. 광인의 사기는 층마인 내게도 배부르지 않은 썩어서 냄새나는 기운이라 달가운 게 아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