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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leo Oct 08. 2022

키보드가 버거운 세대가 온다

2014년 어찌어찌 복학하고 나니 취업이라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토익은 기본이고 기업 인사담당자가 혹할만한 뭔가를 이력서에 남겨야 했다. 지금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공모전, 대학생 기자단에 지원하던 걸 생각하면 영 맛이 쓰다.

그때 주변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추천하던 자격증 중 하나로 컴퓨터 활용능력(이하 컴활)이 있었다. 컴활 합격을 위해 필자는 한글과 엑셀, 파워포인트와 씨름해야 했고… 장렬히 산화했다. 지금 쓰고 보니 내가 왜 컴퓨터 매거진에 있는 건지 의심스럽지만 넘어가자.

어쨌든 컴활 자격증이 없는 필자도, 이 글을 보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정말로 컴퓨터로 이것저것 일을 한다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의 키보드에 얼어붙는 사람들이 대학 동기나 신입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와 나, 사촌동생의 차이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처음 들어온 컴퓨터는 인구통계 처리를 위해 도입된 IBM 1401이다. 필자의 아버지가 1961년에 태어나셨으니 아버지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 컴퓨터가 처음 들어온 셈이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컴퓨터는 일반인이 접하기에는 너무나 먼 물건이었고, 당연히 이를 쓸 일도 드물었다. 지금도 아버지는 컴퓨터로 뭔가를 처리해야 하실 때는 아들들에게 전화로 물어보곤 하신다.

기자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님이 국민 PC로 들어온 데스크톱으로 처음 컴퓨터를 접했다(삼보였는지 주연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90년대부터 일반 가정에서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흔해질 만큼 보급되면서 컴퓨터를 접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PC방과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게임도 컴퓨터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기자의 사촌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아이폰이 국내에도 들어오면서 스마트폰 시대가 열렸다. 휴대폰으로 인터넷도 되고 게임도 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올해 6월 기준으로 국내 스마트폰 사용률은 97.1%에 이른다. 특히 어린 친구들 중에는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접한 이들이 많아졌다.


도구 대신 손가락으로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기기를 다루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거의 대부분의 PC에서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필요하다. 알고 보면 이는 꽤나 올드한 방식이다. 마우스는 1968년에 처음 등장했고 키보드는 타자기 시절까지 포함하면 훨씬 역사가 오래되니까 말이다.

반면, 스마트폰에서는 대부분 손가락으로 터치하는 방식을 통해 앱을 켜고 카톡 메시지를 남긴다. 컴퓨터에서는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도구로 정보를 입력해야 했지만, 모바일 시대에서는 손가락으로 기기에 직접 명령을 내리게 된다. RPG 게임으로 따지면 검으로 상대를 베는 검사에서 맨주먹 하나로 보스와 맞서는 격투가로 전직하게 된 셈이다.


독수리 타법, 부장님만의 전유물 아니다

한창 컴퓨터가 보급되던 무렵 모니터 대신 키보드 자판을 보면 한 땀 한 땀 글자를 입력하는 모습은 인터넷 개그 소재가 되곤 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나이 지긋하신 부장님이 아닌 초등학생, 중학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교육현장에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컴퓨터 사용을 힘들어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 이전에도 학생들 상당수가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을 하고 학교 과제를 컴퓨터로 한다는 것에 버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칠판 대신 화면을 보며 수업하는 시대가 다가오자 이러한 현상이 표면화됐다. 온라인 수업에서 컴퓨터 대신 스마트폰을 쓰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컴퓨터 쓰기가 힘들어 스마트폰으로 감상문을 남기거나 과제물을 작성하는 학생들은 이제 꽤나 흔해졌다.


아직은 컴퓨터로 할 게 많은데...

시간이 흐르고 기술의 변화도 빨라지면서 이렇게 컴퓨터보다 스마트폰이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그만큼 빠르게 변화하지 않았다. 당장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대신 스마트폰만으로 일하라 하면 거품을 물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일단 나부터…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근본적으로는 돈을 벌거나 뭔가 근사한 걸 만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컴퓨터가 익숙한 게 있겠다. 그런데 이는 ‘그동안 그렇게 일해왔기 때문’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여러 가지 포인트가 있다.

일단 모바일 기기는 PC에 비해 화면이 작다. 스마트폰은 제쳐두고 아무리 큰 태블릿이라도 노트북보다 더 큰 화면을 제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언젠가 15~17인치 아이패드나 갤럭시 탭이 나온다면 해결될 수도 있겠지만 그쯤 되면 이미 우리가 아는 모바일 디바이스와는 겨리가 많이 멀어질 것 같다.

입력 방식에도 현재로서는 원활한 비즈니스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간단히 대화를 나누는 데는 모바일 키보드로 ‘ㄹㅇㅋㅋ’라 치거나 힙해 보이는 이모티콘을 터치하는 게 나을 수 있지만, 업무에서는 다르다. 글자에서 기호까지 입력해야 할 기호가 다양한 보고서나 제안서에서는 모바일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문제는 아직도 컴퓨터를 써야 할 일이 많은데 벌써부터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새로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표방하는 요즘에는 더욱 그렇다. 전국 초중고에서 SW교육, AI교육 등을 아무리 열심히 진행해도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면 그렇지 않은 학생과의 격차가 날로 심해질 것이다.


‘악깡배’보다는 나아야

필자 역시 처음 회사원이 됐을 때 오피스 프로그램이나 포토샵 등을 다루는 데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당시 내가 선택한 방식은 ‘악으로 깡으로 배우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필자가 그나마 키보드, 마우스 사용에는 나름 익숙해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PC 사용 자체가 번거로운 사람들에게는 무리일 것이다.

결국 어떻게 컴퓨터와 친해지게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단순히 성적 때문에, 돈벌이 때문에 컴퓨터를 배우는 것을 넘어 컴퓨터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못지않은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직도 PC 게임이 아이들의 큰 즐거움인 만큼 이와 컴퓨터 사용을 접목해보는 것은 어떨까? 단순한 주입식 교육만 반복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컴퓨터를 접하는 빈도에 있어 학생 간의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휴대폰은 있어도 컴퓨터는 쉽게 접하기 힘든 학생이 적지 않은 상황. 천재 개발자가 되고 싶지만 컴퓨터가 없어 꿈을 접어야 하는 일은 최대한 줄여야 할 것이다. 이상은 컴퓨터 매거진이라는 뭔가 구시대의 유물스러운 걸 기획하는 사람의 짧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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