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들어 다시 한번 데스크톱 유저의 고민이 시작됐다. AMD가 라이젠 7000 시리즈 데스크톱 프로세서를 선보인 데 이어 인텔도 13세대 코어 프로세서인 랩터레이크 프로세서를 선보인 것이다. 최신 프로세서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유저들은 어떤 CPU를 사용할지 선택의 시간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초반 반응만 봤을 때 신규 프로세서 경쟁은 인텔의 승리로 보인다. 독일의 PC 전문 온라인 쇼핑몰인 마인드팩토리(Mindfactory)에 따르면, 랩터레이크 프로세서 출시된 주 기준으로 인텔 CPU의 판매량은 70%가 증가한 반면, AMD는 26% 증가에 그쳤다. 라이젠 7000 시리즈의 경우 마인드팩토리에서 출시 2주 만에 판매량이 70% 줄기도 했다. 독일이 AMD 강세인 지역임을 고려하면 성적표가 좋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AMD도 반격할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먼저 라이젠 7 7700X의 저전력 버전인 라이젠 7 7700이 출시를 앞두고 있다. 또한, 라이젠 7 5800X3D가 최신 프로세서와 맞먹는 퍼포먼스로 재조명받는 가운데, 라이젠 7000 시리즈 역시 캐시를 대폭 늘린 버전을 빠르게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인텔과 AMD의 CPU 경쟁은 PC업계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대체로 CPU의 1위 자리는 인텔이 계속 지켜 왔지만, AMD 역시 강한 이인자로서의 입지를 쉽게 잃지 않았다. 인텔과 AMD는 어떻게 지금까지도 계속 싸우고 있는지, 둘의 시작부터 살펴보자.
인텔은 1968년 7월 18일, 고든 무어(Gordon Moore)와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가 공동으로 창립했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1957년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의 창립멤버가 되며 이미 반도체 업계에서 이름이 높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해온 일에 비해 보상은 시원치 않았고, 둘은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나와 자신들만의 회사를 세운다. 지금 인텔은 굴지의 반도체 회사지만, 시작은 스타트업이었던 것이다.
인텔의 본래 이름은 창립자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노이스-무어 일렉트로닉스(Noyce-Moore Electronics)였다. 뭔가 너무 길고 이상해 보인다. 둘도 이를 깨달았는지 전자 집적회로를 브랜드명에 내세우기로 했다. 그래서 통합을 의미하는 ‘Integrate’와 ‘전자를 뜻하는 ‘Electronics’를 조합해 인텔(Intel)이라는 브랜드명을 만들었다.
인텔은 1969년 1101 메모리 칩을 처음 선보인 이래, 1970년에 출시한 1103 DRAM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메모리 산업의 거두로 급부상했다. 하지만 일본 반도체 업체의 저가공세에 밀리면서 1985년에는 영업실적에서 1억 달러 이상 손해를 보기도 했다.
이에 인텔은 메모리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IBM의 개인용 컴퓨터(그렇다, 오늘날 우리가 PC-Personal Computer라 부르는 것이다)에 인텔 마이크로프로세서 8088이 채택되고, IBM PC의 인기가 날로 높아진 것에 주목한 것이다.
인텔은 IBM뿐만 아니라 컴팩을 비롯한 다른 컴퓨터 제조사에도 자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후 인텔 386 PC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되면서 90년대 들어 인텔은 동맹 관계였던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PC 시장의 ‘슈퍼 갑’이 되었다.
이를 돌아보면 인텔은 페어차일드 반도체 출신 직원들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AMD 역시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일하던 사람이 만들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열일하던 제리 샌더스(Jerry Sanders)가 새 경영진과의 마찰 끝에 해고당하고, 그는 1969년 5월 1일,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시스(Advanced Micro Devices)라는 회사를 세운 것이다. 만일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정상적인 회사였다면 컴퓨터의 역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AMD는 1970년 AM2501 논리 계산기로 성공을 거둔 데 이어, RAM 칩 사업에도 집중한다. 이후 1982년에는 인텔에게 라이선스를 얻어 8086과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생산하는 두 번째 업체가 되었다. 이래저래 인텔과 AMD는 시작부터 인연이 많았던 셈이다.
그 와중에 어려움도 있었다. 1986년, 인텔은 386 관련 라이선스를 취소하고 AMD에 관련 기술 공개를 거절했다. 이로 인해 인텔과 AMD는 8년 가까이 법정 다툼을 벌였는데, 이 싸움은 1994년 캘리포니아주 최고 법원이 AMD의 편에 서면서 마무리됐다.
이렇게 초창기 AMD는 인텔의 그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AMD가 본격적으로 인텔 CPU에 대항할 칩을 내놓으면서, 인텔은 더 이상 AMD를 우습게 볼 수 없게 됐다. 지금도 계속되는 CPU 라이벌의 시작이었다.
그렇다면 인텔과 AMD의 뿌리가 된 셈인 페어차일드는 어떻게 되었을까?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실리콘밸리의 1세대 기업 중 하나로,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1957년, 트랜지스터의 최초 개발자였던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의 제자들이 연구소에서 나와 실리콘밸리에 세운 회사가 바로 페어차일드 반도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력 있는 인재들이 페어차일드를 나와 자신만의 길을 가게 된 이후,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고 만다. 물론 1973년에 처음으로 상업용 전하결합소자를 생산하여 디지털 영상 센서의 대중화를 이끄는 등 성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후 타 업체와의 경쟁에서 버티지 못한 페어차일드 반도체는 1979년 유전 산업회사인 슐름베르거에게 넘어갔다가 1987년에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에 다시 매각되었다. 이후 1997년 사모펀드 운용사의 도움을 받아 독립했다가 2016년 온 세미컨덕터에 합병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페어차일드 반도체가 남긴 발자취는 지금도 상당하다. 페어차일드에서 독립한 인원이 만든 인텔, AMD를 중심으로 실리콘밸리는 전 세계 IT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어차일드는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가 될 기회를 날린 체 사라졌지만, 실리콘밸리 전체에는 남긴 것이 많다.
[정보 출처]
세계 브랜드 백과 - 인텔, 인터브랜드,
AMD 희로애락 5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IT동아, 2019-05-09
[고든 정의 TECH+] 오늘로 50살 된 AMD…인텔 만큼 중요한 2인자, 서울신문 나우뉴스, 2019-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