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 상처

어떻게 상처 주지 않고 접촉할 수 있습니까.

by Godot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안전한 세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토 랭크라는 정신분석학자는 출생 트라우마가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출생은 세상과 접촉하는 관계이며, 어머니와는 일정 부분 실연이다. 접촉과 상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어떻게 상처 주지 않고 접촉할 수 있습니까.'


현대에 페미니즘이 강조하는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고려할 때, 상처의 개념과 관계, 교육에 대한 질문을 해보자.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에서 아이를 통제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된다.


"그의 부모들은 모든 부모가 그렇듯 완벽과 거리가 있었지만 케빈을 도우려 애쓰고 있었다. 학대나 방치의 기미는 없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케빈을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들한테 스트레스를 줄까 봐” 혹은 “정신적 외상을 줄까 봐” 두려워했다. 어린이가 심리적으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것은 철저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 <도파민네이션>, 애나 렘키 지음 / 김두완 옮김


우리 사회가 페미니즘의 감수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가스라이팅과 같은 폭력에 맞서고, 숨겨진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회운동이 그렇듯이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우치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폭력과 교육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최근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제기는 폭력과 교육을 구분하지 못해서다. 과거에는 선생님의 감정적인 폭력이 교육적인 훈육이라고 쉽게 용인된 것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마음 담긴 충고조차도 폭력이라고 매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관계에서 상처는 필연적이다. 이는 부정적인 트라우마일수도 있지만 인간을 성장시키는 촉진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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