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르기에 비로소 평등해지는 사회를 꿈꾸며
모두가 자기답게 살기를 원하는 건 나의 오랜 소망이다. 개성을 지키고, 타인의 시선이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따라 사는 삶. 나는 이것이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상태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도달해야 할 '끝판왕' 같은 모습이라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두 날개인 '자유'와 '평등'은 슬프게도 종종 서로를 공격한다. 자유를 강조하면 불평등이 심화되고, 평등을 강조하면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억압되어 하향 평준화된다. 우리는 이 시소 위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왔다.
현대 사회를 보라. 우리는 정치적으로 평등해졌지만, 역설적으로 '동이불화(同而不和)'의 늪에 빠졌다. 불안하기 때문에 남들과 똑같아지려(同) 애쓴다. 유행하는 옷을 입고, 남들 가는 여행지를 가고, 평균적인 삶의 궤적을 쫓는다. 겉모습은 평등해진 것 같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갈등하며 조화(和)를 이루지 못한다.
이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개인이 지워진 평등은 폭력이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한다고 했다. 남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되(和), 결코 뇌동하거나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不同) 상태다.
나는 이 개념이 민주주의의 딜레마를 해결할 열쇠라고 믿는다. 화이부동의 사회에서 '평등'의 정의는 바뀐다. 과거의 평등이 "너와 내가 똑같아지는 것(Uniformity)"이었다면, 화이부동의 평등은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동등하게 대우받는 것(Existential Equality)"이다.
바이올린이 첼로가 되려 하지 않고, 첼로가 플루트 흉내를 내지 않을 때 비로소 오케스트라의 화음(Harmony)이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서로를 존중해야 할 이유가 되는 사회. 이것이 내가 꿈꾸는 '실존적 평등'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투표장에 갈 때만 동등한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매 순간,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고, 그 다름이 차별이 아닌 고유함으로 인정받는 평등이 공존해야 한다.
내가 꿈꾸는 세상은 거창한 유토피아가 아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모두가 각자의 개성대로 살아가는 사회. 옆 사람과 내가 다르게 사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비교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사회.
그곳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싸우지 않는다.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이 단순한 진리가 상식으로 통하는 화이부동의 사회야말로, 성인들이 꿈꾸었고 우리가 완성해야 할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도달점이 아닐까.
아래 시는 언젠가 내가 끄적였던 메모다. 사회와 세상에 자꾸 저항하다가 결국 자기 색깔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게 <1984> 소설에서처럼 오브라더의 고문에 굴복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는 매번 다짐한다.
상처 받지 않으리라.
나의 벽을 만드리라.
나는 강해졌다.
그리하여
너는 개성을 잃었다.
풍파에 닳고 닳은 저
자갈밭의 돌처럼
단단하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