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학적 해석-1

기호와 기의의 자의성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by Godot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흔히 생물학이나 과학사에 관한 이야기, 혹은 삶의 방향을 잃은 작가 개인의 극복기로 읽힌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파편화된 생각들을 노트에 정리하면서, 내게 다가온 이 책의 진짜 본질은 다름 아닌 '기호학'이었다.


이 책은 우리가 굳게 믿고 있던 기표(이름)와 기의(본질)의 연결 고리가 사실은 얼마나 자의적이고 허술한 것인지를 폭로하는 소쉬르의 언어학을 보여준다.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1. 플라톤의 『크라튈로스』, 그리고 억지로 붙인 이름표들


사물에 붙여진 '이름(기표)'이 과연 그 사물의 '본질(기의)'을 온전히 담고 있는가? 이 질문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플라톤의 『크라튈로스(Cratylus)』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물의 이름이 그 본질을 필연적으로 반영하는 자연적인 것(Physis)인지, 아니면 단지 인간들의 사회적 약속이자 자의적인 기호(Nomos)에 불과한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인다.


그렇다면 이토록 오래된 논제가 왜 20세기에 이르러서야 페르디낭 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통해 새롭게 발견된 것처럼 알려져 있을까? 고대의 논쟁이 '언어와 실재'에 대한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에 머물렀다면, 소쉬르는 이를 현대 학문인 '구조주의 기호학'의 토대로 확립했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é)라는 개념을 명확히 분리하고, 언어란 미리 존재하는 사물에 이름표를 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인간이 자의적으로 세계를 분절하고 차이를 만들어내는 '구조적 시스템'임을 과학적으로 선언했다.


책 속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바로 이 소쉬르 이전의 낡은 세계관, 즉 이름이 곧 본질이라는 환상을 맹신했던 인물이다. 그는 혼돈스러운 자연에 억지로 '이름표'를 붙이며 자신만의 우주적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그것은 복잡하고 무질서한 우주 앞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도 폭력적인 방어기제였다.


반면 작가 룰루 밀러가 도달한 깨달음은 지극히 소쉬르적이다. 진화의 거대한 계통수라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어류'라는 단어(기표)에 대응하는 실제적 본질(기의)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기호는 철저히 자의적이었으며, 복잡성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편의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2. 복잡성 앞에서의 의미 상실, 그리고 재구축


기표와 기의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즉 우리가 세계를 분류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시스템적 환상이 무너질 때 인간은 심연으로 추락한다. 삶에서 의미를 상실하고, 방향을 잃고 허무주의에 빠지기 십상이다. 우리가 세계의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 치밀하게 구축해 온 질서가 사실은 거대한 착각이었음을 인정하는 과정은 몹시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그 의미 상실의 심연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가는 자의적이고 혼돈스러운 세계 속에서 기꺼이 새로운 의미를 재구축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고기'라는 낡고 폭력적인 기호를 과감히 버림으로써, 비로소 생물들이 가진 원래의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자유를 얻어낸 것이다.


3. 우리는 왜 '중세의 가을'을 그리워하는가


말했다시피 기호와 기의가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가 딛고 서 있던 세계의 의미가 송두리째 흔들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요한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을 대척점에 두고 떠올려 본다. 호이징가가 그려낸 중세는 쇠락해 가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으로 다가올까?


그것은 중세가 '기표'와 '기의'가 완벽하게 일치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의미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에게 우주는 모든 사물과 현상이 신의 섭리 아래 고정된 상징을 가지는 공간이었다. 하늘의 별부터 길가의 돌멩이 하나, 인간의 신분과 직업까지 '거대한 존재의 사슬' 안에서 자기만의 확고한 자리가 있었다.


호이징가의 중세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곳에는 '의미 상실의 불안'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기호가 본질과 단단히 결합되어 있는 상징주의의 시대. 현대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지고, 기존의 이름과 경계들이 해체되어 허무주의가 밀려올 때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 확고했던 '의미의 시대'를 향수병처럼 그리워하게 된다.


4. 물고기가 사라진 자리, 복잡성을 직시할 자유


하지만 룰루 밀러는 진화의 거대한 계통수라는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어류'라는 단어에 대응하는 실제적 본질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image.png


그것은 중세적 우주관, 즉 '모든 것에는 정해진 의미와 자리가 있다'는 오래된 환상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치밀하게 구축해 온 시스템이 사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의적으로 그어놓은 선에 불과했다는 깨달음.


하지만 이 책이 도달하는 곳은 허무주의의 늪이 아니다. 작가는 자의적이고 혼돈스러운 세계 속에서 기꺼이 새로운 의미를 재구축한다. '물고기'라는 낡고 폭력적인 기호를 과감히 던져버림으로써, 비로소 세상이 가진 원래의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자유를 얻어낸 것이다.


절대적 진리도, 완벽하게 들어맞는 이름표도 없는 세계. 우리는 지금 그 자의적이고 무한한 복잡성 위에서 스스로 임시적인 합의와 의미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표가 떨어져 나간 바로 그 자리에, 비로소 진짜 경이로운 우주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민주주의의 끝판왕, 화이부동(和而不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