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학적 해석-2

기호와 기의의 자의성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디로 향하게 될까.

by Godot

1. 권력의 도구가 된 해체주의와 기호의 무기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현대 사회는 기존의 이름과 경계를 끝없이 해체해 왔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이 ‘기호의 자의성’은 단순히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적 인식론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재편하는 실질적인 도구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젠더, 국경, 전통적 가족 등 과거에 견고하게 유지되던 기호들을 해체하는 작업은, 기존 체계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담론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대중의 입장에서 이는 낡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기보다, 자신들의 일상을 지탱하던 의미망(기표와 기의의 결합)이 특정 진영의 권력 의지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체당하는 극심한 불안정성으로 인식된다.


2. 의미 상실의 시대와 원자화된 인간: 『소립자』의 경고


기표와 기의가 완전히 분리되고 모든 가치가 해체된 세계에서, 개별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게 될까. 미셸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는 바로 이 지독한 '의미 상실의 시대'가 만들어낸 적나라한 인간상을 그려낸다. 절대적인 가치와 보편적 윤리의 기준이 증발해 버린 진공 상태에서, 인간은 더 이상 의미 있는 관계로 얽히지 못하고 맹목적인 욕망과 자본의 논리 주위를 부유하는 고립된 '소립자'로 전락한다.


최근 세상을 충격에 빠뜨린 '앱스타인 파일'에 담긴 추악한 현실은 단순한 엘리트 계층의 일탈이 아니다. 이는 모든 거대 서사와 윤리적 경계가 자의적이라며 해체된 이후, 극단적으로 파편화된 욕망만이 남은 사회의 구조적 징후다. 기호의 무분별한 붕괴가 가져다준 것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존재의 좌표를 잃고 끝없는 공허 속으로 침잠하는 그로테스크한 원자화였다.


3. 이름의 복원: 의미 해체에 대한 시스템적 반동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트럼프의 부상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관찰되는 포퓰리즘 현상은 대중의 비합리적 맹신이나 시대적 퇴행이 아니다. 그것은 기호의 자의성이 극단적으로 추구될 때 사회 시스템 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역학에 가깝다.


사회라는 체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간에 공유되는 최소한의 공통된 의미(합의된 기호)가 필수적이다. 국경은 뚜렷한 물리적 선이어야 하고, 성별은 생물학적 기준으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대중의 요구는 복잡성을 단순화하려는 사회 체계의 생존 기제다. 엘리트나 해체주의자들이 모든 기호를 자의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해체하려 할 때, 이에 맞서 붕괴된 소통의 기반과 사회적 경계를 다시 확고히 고정하려는 시스템적 복원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4. '중세의 가을'로의 회귀가 암시하는 것


결국 이 거대한 충돌은 앞서 언급했던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이 표상하는 세계관, 즉 모든 것에 정해진 의미와 자리가 있는 '상징주의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사회적 관성과 맞닿아 있다.


해체주의자들은 "우주에는 정해진 의미나 계층이 없으며, 물고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현실의 토대가 사실은 허구임을 직시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기표와 기의가 완전히 분리된 상태에서는 어떤 제도나 법, 공동체도 기능할 수 없다. 대중이 강력한 권위를 통해 무질서한 세계에 다시 '이름표'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해체의 가속화로 인해 발생하는 인지적 과부하와 사회적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취하는 객관적인 방어 기제일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호학적 해석-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