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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트사과 Aug 01. 2023

스파이더맨 :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이게 멀티버스지!

멀티버스 : 다중우주론(多重宇宙論)

멀티버스란 여러 가지 사건과 조건에 의해 우주가 시간과 공간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여러 개의 다중우주가 무한하게 존재한다는 가설이다.


우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덕분에 멀티버스 이론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다. 멀티버스 개념을 영화에 대입해 특정 우주 및 세계관에 없었던 인물들을 언제든 다른 우주의 사람으로 등장시키는 것으로 이야기 소재와 공간적 범위를 늘리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인피니티 사가 이후 더 이상 강한 임팩트를 주기 어려워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전체의 수명을 한층 늘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마블 팬들 입장에서도 이는 좋은 소식이었다. 디즈니+에 드라마,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공개되며 영화에서 담기 어려운 사건과 조연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영화 하나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개연성을 설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블의 멀티버스 세계관은, 평행세계의 인물이라며 새로운 등장인물을 복선 없이 뜬금없이 등장시키거나, 이렇게 등장한 인물을 세계관에 제대로 녹이지 못해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황급히 콘텐츠를 마무리하는 등 그리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간편한 IP 확장용으로 실속 없이 덩치만 늘리고 있는 형국이다.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마블의 무리한 확장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듯하다.


소니 픽쳐스에서 제공하는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Spider-verse)는 애초에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구성된 이야기다. 시리즈의 시작인 <스파이더 맨: 뉴 유니버스>는 원래 세계관의 스파이더 맨을 대신해 방사능 거미에 물려 스파이더맨이 된 '마일스 모랄레스'가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스파이더맨들과 팀을 이루어 문제를 해결하며 진정한 스파이더 맨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스파이더 맨: 뉴 유니버스>에서는 빌런 '킹핀'이 자신의 과오로 사망한 아내와 아들을 다른 세계에서 데려오기 위해 차원이동기를 작동시킨다. 이제 막 스파이더맨으로 데뷔를 시작한 마일스 모랄레스는 차원이동기의 영향으로 이 세계에 넘어와 표류하게 된 다른 세계의 스파이더맨들을 만나 팀을 이루어 킹핀을 막아내려 한다.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멀티버스는 조금 특이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멀티버스의 모습이 어떻든 간에 각 세계에는 오로지 한 명의 스파이더맨이 존재할 수 있고, 그들의 성격과 능력을 얻는 과정, 연인과의 관계 그리고 각성하는 계기까지 모두 유사하다는 것이다. 원래 존재하던 스파이더맨 대신에 스파이더맨 역할을 해야 하는 마일스 모랄레스는 아직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고, 각성하게 되는 계기도 없었기에 팀에서 미덥지 못한 취급을 받는다.

왼쪽부터 마일스 모랄레스, 피터 B 파커, 그웬 스테이시


그러나 킹핀의 부하인 '프라울러'가 삼촌인 '애런'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후 추격전에서 애런 또한 자신의 조카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애런은 머뭇거리다 결국 킹핀의 총에 맞고 죽게 된다.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던 삼촌의 죽음과 그동안 자신을 아이 취급하며 억압하던 아버지의 위로는 마일스 모랄레스를 진정한 스파이더맨으로 각성시켰고 결국 마일스 모랄레스는 차원이동기를 부수며 세계를 정상으로 돌려놓는다.


줄거리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는 스파이더맨이 존재하는 세계, 이른바 Spider-verse를 배경으로 '공식설정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공식설정 사건'이란 위에서 서술했던 설정으로 각 세계에는 오로지 한 명의 스파이더맨이 존재할 수 있고, 그들의 성격과 능력을 얻는 과정, 연인과의 관계 그리고 각성하는 계기까지 모두 유사하다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스파이더맨들은 정신적 지주가 되는 삼촌 정도의 가까운 친족과, 가장 가까운 서장이 죽어야만 한다.


1편 이후 어엿한 스파이더맨으로 성장한 마일스 모랄레스는 아직도 자신을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부모님 때문에, 그리고 전편에서 연인 비슷한 관계로 발전한 '그웬' 때문에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정체를 알릴 수 없기에 자신을 방황하는 사춘기 소년 정도로 생각하는 부모님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만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인연에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그웬은 자신의 세계에 나타난 다른 우주의 빌런으로 인해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를 만나 그들의 일원으로 합류한다. '스파이더 소사이어티'는 스파이더맨 중에서도 능력 있는 인물을 선발해 차원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여 해당 차원을 지울 수 있는 악당이나 변칙적인 존재를 잡거나 격리하여 원래 차원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집단이다.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의 목적은 '공식설정 사건'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하여 차원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즉 이들은 스파이더맨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진정한 스파이더맨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나아가 차원의 붕괴를 막을 수 있도록 개연성을 지키는 일을 한다.


그웬이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에 합류한 시점, 마일스 모랄레스는 1편에서 킹핀의 부하이자 차원이동기에 휘말려 차원을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은 '스팟'과 만난다. '스팟'은 마일스 모랄레스가 자신의 숙적이라 여기지만 정작 마일스 모랄레스는 관심이 없다.


'스팟'은 계속 차원이동장치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능력을 확장시킨다. 이는 '스파이더 소사이어티'가 그를 포착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 그웬을 비롯한 그의 팀이 그를 뒤쫓는다. 마일스 모랄레스는 투명화 능력을 이용해 그들의 뒤를 따라 '스파이더맨 인디아'의 세계로 넘어간다. 그곳에서 마일스 모랄레스는 스파이더맨으로서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공식설정 사건'을 깨버리는 일을 벌인다.

"모든 우주에서 그웬 스테이시는 스파이더맨을 사랑하게 돼. 그리고 그 모든 우주에서... 항상 좋게 끝나질 않아."

이로 인해 그는 스파이더맨 소사이어티에 넘어가고 그곳에서 스파이더맨으로서 자신의 운명을 확인함과 동시에 자신의 존재 자체가 변칙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에게 힘을 준 거미는 원래 그가 살던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그 거미가 마일스 모랄레스를 물어버림으로 인해 마일스 모랄레스가 살던 세계의 스파이더맨이 죽고 변칙점이 생긴 것이다.


마일스 모랄레스는 충격 가운데 어머니의 응원을 떠올리고는 자신을 추적하는 모든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의 스파이더맨을 따돌리고 원래 세계로 넘어간다.


문제는 차원이동기는 사용자의 DNA를 인식하여 해당 차원으로 사용자를 보내주는 것이었고 마일스 모랄레스를 물었던 거미는 그가 원래 살던 차원과 다른 곳에서 온 거미였기에 마일스 모랄레스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마일스 모랄레스는 이 세계에는 아직 살아있는 애런 삼촌을 만나고 그의 뒤를 이어 프라울러를 하고 있는 2대를 만난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이 차원의 '마일스 모랄레스'. 동시에 스파이더맨 마일스의 집으로 향하는 스팟, 반격을 예고하는 마일스, 그를 구하기 위해 모인 스파이더맨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난다.

미겔 오하라와 스팟


운명과 저항의 아이러니


멀티버스와 시간을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있다.


'함부로 과거, 혹은 다른 세계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된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든,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든 특정 행위가 어떠한 결과를 야기할지 알 수 없으니 그 세계와 시간선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 1편의 빌런인 킹핀과 2편의 마일스 모랄레스의 행보가 겹친다는 점이다. 킹핀은 자신의 과오로 가족을 잃은 과거를 바꾸기 위해 차원이동기를 가동한다. 그 행위가 어떠한 문제를 불러일으킬지 알면서도 말이다.


마일스 모랄레스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미래, 그러나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것이 기정사실인 특정 사건을 바꾸고자 차원이동기를 적극 이용한다. 그리고 마일스 또한 킹핀과 마찬가지로 그 행위가 불러올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결국 이 둘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게 될지 알면서 행동하는 인물들이다. 다만 마일스는 그럼에도 모두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고뇌하기에 영웅인 것이고, 킹핀은 자신의 만족만을 위하기에 빌런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굉장히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스파이더 소사이어티의 수장이자 한때 킹핀처럼 잃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미겔 오하라'. 미겔 오하라가 마일스를 적극적으로 저지하는 것은 자신이 행한 과오가 불러온 결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같은 문제를 두고 킹핀은 자기중심적으로, 미겔 오하라는 현실적으로, 마일스 모랄레스는 이상적으로 사태를 해석한다. 또한 킹핀은 과거를 바라보고 있고, 미겔 오하라는 현재를 바라보고 있으며, 마일스 모랄레스는 미래를 바라본다. 이 세 인물의 각기 다른 시선과 대처는 결국 '스팟'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다.


운명에 저항할수록 운명이 정한 길에 더욱 가까워지고, 운명에 수긍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깨달아가는 스파이더맨들의 이야기는 '멀티버스'라는 소재로 개연성을 얻는다. 멀티버스는 일종의 가능성이다. 멀티버스를 세계관에 대입함으로써 특정 행동을 해서, 혹은 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가능성의 세계가 벌어진다.


이 가능성들은 단순히 많은 인물을 불러와 IP를 확장하는데 그치지 않고 마일스 모랄레스가 '사건을 해결하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또한 Spider-verse라는 독특한 형태의 멀티버스 세계관을 차용해 각 우주가 독립적인 동시에 무언가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자칫 정신없어 보일 수 있는 세계관에 통일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다른 우주의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스파이더맨의 팬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이는 괜찮은 선택이다. 원작의 팬은 실망을 하건, 환호를 하건 어찌 되었든 영화를 볼 것이다. 하지만 일반 관객 입장에서 보면 스파이더맨이 잔뜩 등장하는 세계관은 정신없고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파이더맨이 '공식설정 사건'을 통해 비슷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아무리 많은 스파이더맨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관객은 중심인물 몇 명만 기억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블이 시작한 멀티버스의 흥행은 이제 모든 콘텐츠 시장의 주류가 되고 있다. 하지만 멀티버스를 제대로 이해하여 자신만의 색채를 담은 작품은 그리 흔하지 않다.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시각적으로도 다른 세계의 단편적인 모습만 서술하면서도 왠지 그 세계에 스파이더맨이 있다면 그렇게 생겼을 것 같다,라는 핵심적인 개연성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그렇기에 관객은 정신없이 그림체가 바뀌고, 영상으로 접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만화적 요소가 등장하고, 온갖 오마쥬와 패러디가 난무하는데도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멀티버스는 이거다!라는 영화이다.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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