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사과 Aug 28. 2023

존경하는 선배님께 읍소

안녕하세요, 교장선생님?

새내기 교사입니다.

교장선생님께 글을 올리면서도 수많은 고민과 고뇌를 반복하였습니다.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어떻게 전달해야 제 마음을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을지, 교장선생님께 편지를 올리는 것이 맞는 행위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 전 문득 교장선생님과 복도에서 마주친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늘 저희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려 노력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까마득한 후배인 저에게도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사려 깊게 다가와 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무례인 줄 알면서도 어렵게 몇 자 적어 보낼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저는 요즘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작게 느껴집니다.

저보다 어린 선생님이, 그곳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을 훌륭한 선생님이 차디찬 곳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운이 좋아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들이 많은 곳에 발령받고,

운이 좋아 저를 너무나 믿어주는 학부모님들이 가득한 교실을 맡고,

운이 좋아 저를 사랑해 주는 아이들을 만난 제가,

그 선생님의 마음을 감히 공감하고 이해한다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저는 제 일인 것 마냥 우울감에 젖어 들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웃는 모습으로 즐거운 수업을 하는 것조차 죄스럽고 고통스럽습니다.

미소가 아름다운 어떤 아이는 저를 보고 선생님이라는 꿈을 꾼다고 말합니다.

집중하는 모습이 멋진 어떤 아이는 저에게서 남자 선생님이 되겠다는 로망을 발견했다 말합니다.

어떤 학부모님은 아이가 저를 만나 크게 성장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또 다른 학부모님은 항상 애써주셔서 감사하다며 쪽지를 보내주십니다.

저는 이토록 감사한 말을 들으면서도, 행복감에 파묻히면서도 아이들에게 선생님을 꿈꾸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람된 말을 들으면서도 웃을 수 없습니다.


다만 운이 좋았기에,  무사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제가, 혹은 동기가, 혹은 옆반 선생님이, 혹은 후배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걸음 하나하나마다 깨어질 듯한 살얼음 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명을 달리하신 선생님께 죄스러워서 희희낙락 웃을 수 없습니다.

이 일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제 일이고, 동료들의 일이고, 교육계 전체, 국가 전체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부모님이 걱정된다고 하셨습니다.

함께 싸워줄 힘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누구에게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를 피라던,

그 강인하고 당당한 부모님의 약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생의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으로서 나서야 할 때는 나서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부모 된 심정으로는 말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개인의 힘으로 바꾸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강대하고 넓기에 자꾸만 나서려는 제 안위가 걱정된 탓이겠지요.

흐르는 세월 속에서 잔혹한 진실을 체감했기에 그러신 것이겠지요.


하지만 저는 선생님들의 울분을 보았습니다.

사리사욕 없는 맑고 순수한 분노를 보았습니다.

진심으로 사회를 걱정하는 멋진 어른들을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무언가 바뀔 수 있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 소원은 아이들이 교사의 꿈을 꾸도록 하는 것입니다.

너무 담대한가요?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 선생님은 정말 멋진 분이야!'라고 어디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소원은 곧 철없는 생각으로도 이어집니다.

바로 선 학교에서 진정한 존중과 배려를 아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그 아이들이 자라나 미래의 주역이 된다면 얼마나 멋진 나라가 될까 하는 유치한 생각을요.

정의를 믿고, 공정의 가치를 알며, 존중과 배려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득한 미래는 찬란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미래에 제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교사의 역할은 가르치고 길러내는 것, 거기서 끝이니까요.


선배님께 다른 것을 바라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선배님께서 후배들이 가는 교육의 길을 응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민주주의, 자유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당당하고 싶습니다.

존중과 배려를 알려주는 선생님으로서 세상의 따뜻함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숭고한 진심과 정의로움은 그 빛을 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부디, 손을 뻗어 선생님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함께 손을 맞잡아 변화를 선도하여 주십시오.

치기 어린 행동이라 질타하신다면 숙고하여 들을 것이고

징계가 내려온다면 달게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침묵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 미약한 목소리라도 도움이 된다면 외칠 것이고

나약한 손길이라도 뻗을 수 있다면 뻗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변화가 일어난다면 기쁘게 두 팔 벌려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아직 어리고 부족한 새내기 교사가 감히 읍소합니다.

경험 적고, 힘없는 일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2023. 08. 23

막내 교사 올림

매거진의 이전글 슬럼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