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신도시에서 흔히 보이는 15층짜리 아파트의 그늘이, 골목에 깊은 어둠을 내리깔고 있다.
주변보다 온도가 낮은 골목에는 건물 때문인지
바람의 유속이 빨라져 언제나 칼바람이 맴돌았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거북이처럼 고개를 파묻어 보아도 거세게 들어치는 바람은 막을 길이 없다.
그러다 문득 발아래 놓인 푸른 은행잎이 보였다.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니 낙엽이 즐비한 계절이기는 하다만 푸른 은행잎이라니.
뭐가 그리 급하다고 벌써 떨어졌을까. 좀 더 노랗게 익어도 괜찮을 텐데.
혹시 햇빛이 들지 않는다고 반항이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이른 추위에 파랗게 질려버린 걸까.
서로 몸을 포개고 부들대는 몸을 덮어주는 푸른 은행잎이 퍽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