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말

언제할 수 있을까

by 류서안

분명 좋은 말을 써주고 싶었는데, 결국 사랑한다는 말만 남았다.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흔하고 아직 와닿지 않아서 지워버리니 남은 말이 없었다.

엊그제 꾼 꿈에서 나는 화이트 와인을 병째로 들고 마셨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기억나지 않는 등장인물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와인을 먹는 꿈이었다.

대화의 내용도 남아있지 않지만 즐겁고 편안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와인을 꿈에서 먹다니, 무의식중에 와인이 먹고 싶었나보다고 생각했다.

분명 행복한 꿈이었을 텐데, 사랑스러운 말들은 이렇게 기억나지 않는 게 슬펐다.

현실에 남아있는 말은 내뱉는 게 좋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말,

그렇게 말하지 말지 야속했던 말,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 그런 말들만 남아있다.

행복하고 사랑했던 말들은 정확하게 대사로 남아있지 않고 장면으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그 기분으로, 내가 그때 너에게 웃어줬던 나의 웃는 모습으로.



나를 당신들을 사랑한다고 외치고, 말하고 싶다가도

그런 꿈속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꿈에서라도 바라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고,

그런 꿈은 너무나도 허황되고 욕망에 가득하여서,

꿈을 꾸고 난 다음 몸서리치도록 허무하다.

꿈속에 사는 나는 그때만큼만 행복하다가

현실에서는 나의 꿈을 빼앗긴 느낌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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