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당신, 아버지 : 잦은 사업 실패로 술에 취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자녀는 셋이고 앞으로 키울 날이 많지만 계속된 실직이 괴롭힌다. 어린 날은 몰랐다. 이렇게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망해갈 줄. IMF는 느닷없이 찾아왔고, 공들여 쌓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소설에 나오는 대사처럼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학창 시절의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언제나 우위에 있었다. 힘으로도 머리로도 나를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타고나길 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내려가고 있었던 걸까. 올라가는 계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반지하에 있었다. 나는 항상 올라가는 사람이었다. 분명히 올라가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어머니는 항상 곱게 차려입으시고, 집안일을 하셨다. 흔히 말하는 양갓집 규수였고, 권세 있던 집안은 아니지만, 항상 나랏일을 했던 집안의 고명딸이셨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셨을까. 어머니는 많지 않지만 정말 고왔던 한복을 항상 깔끔하게 다려 입으시곤 했다. 내가 국민학교를 갈 때면 까치집이 지어져 있던 내 머리를 힘껏 누르며 잘 다녀오라 해주셨던 것 같다. 이듬해 어머니는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에게 어머니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이게 전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아버지는 술에 빠져 사셨다. 당신의 술과 당신의 슬픔과 당신의 몸을 챙기느라 자식들은 개취급도 하지 않았다. 큰 누나는 그런 아버지와 나를 버리고 떠나버렸다. 큰 누나가 떠날 때쯤에는 나도 이미 아버지의 키를 넘길 만큼 커버렸고, 동네에서 내 위의 친구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누나가 이때까지 버티다 도망친 게 의외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를 보면 항상 한심했고, 무식하게 몸만 쓴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르다고, 나는 다른 인생을 살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우물에 담긴 것 같은 회상이, 맥주의 탄산 맛에 깨져버리고 현실이 보인다. 지금의 나는 어떻지? 내가 그렇게 무시했던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지 않나? 모르겠다. 모르겠는 것투성이다. 식료품 가게를 크게 하던 나는 한창 잘 나가고 있었다. ‘봐라, 대학 안 나와도 열심히 하다 보면 다 되더라!’ 큰소리치던 내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일단 눈앞의 맥주를 모두 들이켠다. 내가 바란 상황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어제까지 나는 분명 사장님이었다. 동업을 제안했던 친구를 너무 믿었던 게 잘못이었을까. 나의 무지가 나의 발목을 잡은 일이 무릇 처음은 아니었을 테지만, 오늘처럼 내가 이렇게 무력할 수가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 아버지를 이겨서 대학을 가고, 소위 말하는 가방끈이 긴 사람이 되었으면, 오늘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취기에 공상의 끈이 끝없이 계속되었다. 어디서부터 다시 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당장 내야 할 돈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물론 술에 취해서 그럴 거다. 집에 가서 한숨 자고 나면 생각이 날 거다. 이 시련의 정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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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어머니 :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내 생을 버텨내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또 벌어내고, 견뎌가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일했고, 아버지가 챙기지 않는 동생들을 챙겼다. 누구보다 착실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고, 힘든 상황에서 엇나가지 않는 올곧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다들 힘들게 살아가지 않나. 편하게 놀고 공부하며 대학을 가는 집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부러워할 일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렇게 살아야 견뎌졌다. 그래도 가끔 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오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할 때면, 그런 큰 뿌듯함으로 인생에 의미가 새겨졌다. 으레 그렇듯, 나이가 찬 나는 결혼을 위한 선을 보았었다. 연애결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출구를 찾을 수 없었다. 나에게 결혼은 조건이었다. 지금 여기서 날 꺼내줄 조건. 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좋은 조건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조건에 연애를 끼워 맞출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거기서부터 잘못되었나 싶다. 아무튼 나는 나 자체로 조건이 될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를 꺼내줄 구원자를 선으로 찾아다녔다. 그렇게 만난 게 은수 아빠다.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사기 결혼이다. 현실을 받아들였을 뿐. 사실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계속 말하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그들 중에 가장 점잖고 좋은 사람을 알아봤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그는 다정한 편이었고, 책임감도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하루빨리 나를 이 지옥에서 꺼내줄 수 있는 상황을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사업을 순조롭게 하고 있었고, 선으로 만난 우리는 뚜렷한 목적으로 한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골인 지점을 향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만난 지 10개월 만에 결혼했다.
다들 하는 결혼생활 나라고 특별할 게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결혼 후 1년 동안은 행복했던 것 같다. 지옥에서 꺼내진 것뿐만 아니라, 어쩌면 다른 세상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은수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IMF라는 것이 터졌다. 뉴스에서는 알 수 없는 경제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한 나라가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악착같이 일하며 다녔던 여상에서 회계를 그렇게 열심히 배웠는데도, IMF는 어떻게 이겨내는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이는 술을 먹고 오는 날이 부쩍 많아졌고, 답답한 마음에 회사 돌아가는 상황을 물어봐도 돌아오는 건 큰 소리로 질러오는 모욕뿐이었다.
내가 생각한 나의 구원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분명 좋은 사람일 텐데,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큰 구원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그저 열심히 살고, 살아낸 만큼 보상받고, 언젠가는 조그만 아파트를 사서 애들을 키우고 시집장가보내는 그런 너무나 평범한 일상을 구원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큰 꿈이었나. 왜 나만 이런가. 왜 나만 이렇게 힘들까. 나는 구원의 피해자였다. 누가 나를 구원했던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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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 딱 지금의 날씨였다. 해는 길어지고 있고, 한낮에는 덥고, 하교 시간이 되면 어두워지는 하늘과 날씨. 그날따라 아침부터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나는 아침 등교를 일찍 하는 편이었는데, 하필 오늘따라 선도부가 일찍 교문에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괜히가 아니라 정말 긴장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남녀가 가릴 것 없이 교복을 줄이는 것이 매우 유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리 대범하지 않아서, 소위 잘 나가는 친구들의 교복 줄이기에 비해서는 정말 미비하게 줄였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너무 통이 커서 부 해 보이게 하는 나의 교복 재킷을 그저 내 몸에 맞게 정상적인 사이즈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중학생은 하루가 다르게 클 것이라며 정장 마이보다 커 보이는 재킷으로 맞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인 것은 줄인 것. 마주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선도부원들과 선생님의 눈초리가 나를 관통하는 것이 소름 돋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을 알아보았는지, 평소 한문을 가르치셨던 선도부 담당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한자의 한 획, 한 획을 자세히 보시는 분이라 그런 걸까. 내 재킷이 조금 달라붙는 것 같다며, 줄인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셨다. 아니면 그냥 내가 누가 봐도 걸릴 것이 있어 보여서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처럼 보였으려나. 앞서 말한 것처럼 잘 나가는 친구들처럼 대범하게 줄이진 않았기 때문에, 아니라고 손을 내졌는 나의 반응에 선생님은 훈계를 꽤 하시고 난 다음에야 나를 교실로 올려 보냈다. 벌점을 받거나 벌을 서지는 않았지만, 난 충분히 부끄러운 등교를 했다. 내가 훈계를 듣는 동안 스쳐 지나갔던 그렇지 않은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날은 정말 뭐가 있는 날인가, 교실에 도착해서 오늘 시간표를 다시 확인하니 3교시가 한문이었다. 오전에 나에게 훈계를 쏘아댔던 선생님과의 조우가 이루어질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또, 그날따라 나는 음악을 듣지 않고 하교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정말 많이 들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엄마가 큰 반대 없이 즐기게 해 준 것이 2가지 있었는데, 음악 듣기와 독서였다. Mp3라는 것으로 음악을 듣던 시절, 가격도 중요했지만 엄마와 둘이 손잡고 갔던 하이마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소니의 강낭콩 모양의 mp3를 구매했는데, 정말 부서지기 직전까지 사용했고, 나의 중학교 시절 등하교를 함께해 주었다. mp3안에 음악을 넣고 정리하는 게 거의 하루 일과이다 시 피했고 음악을 안 듣는다는 선택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는데, 왜 그날따라 이어폰을 내 귀에 꽂고 싶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당신을 만나고 저 멀리서 내 이름을 불러대는 소리를 빠르게 알아채려고 그랬나 보다라고 생각하기엔 인생이 너무 가혹하지만, 무튼 그날따라 음악 없는 길거리가 흑백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 그때의 당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매일 등하교를 하던 골목. 인사하던 동네 할머니가 하시는 슈퍼(아버지가 식료품가게를 크게 하면서 물건을 조금씩 때 주던 슈퍼라고 하자). 내가 신은 신발. 내가 하던 행동. 그 모든 게 너무도 선명하게. 잊고 싶지 않아서일까. 나는 분명 잊고 싶은 기억이라고 생각하는데. 너무 선명한 기억이 가끔 나를 삼키면 당신이 너무도 밉다. 지금은 모두 잊었을 당신들. 그걸 아직도 기억하냐고 할 당신들이 미워진다.
어쩌면 술에 취해 걸음에 몸을 맡겨 멀쩡할 수 없었던 당신을 마주쳤을 때, 나는 도망가고 싶었는지 모른다. 같이 집으로 향할게 아니라, 나 혼자라도 도망치고 싶었을지 모른다. 분명 느끼고 있었을 거다. 지금 집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절대 편히 쉬지 못할 거다. 대충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 어린 동생이 하교해서 집에 있었을 거고, 나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딱히 도망칠 곳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 당신은 젊은 날의 치기라고 하기엔 나에게 너무 많은 기억을 남겼다. 그게 지금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금은 이빨 빠진 호랑이라며 어머니와 웃으면서 얘기하더라도. 그때의 열다섯의 나는 아직 나로 서있다. 조르고 졸라 샀던 내 신발을 쳐다보면서, 땅으로 기어들어가는 기분으로 집에 걸어가야 했던 내 기분을 알까.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구렁텅이로 내몰아서 술을 마셨던 걸까. 그때의 당신의 나이에 가까워지는 나는, 당신을 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때와 지금의 당신의 차이점은 나이 밖에 없다. 그때는 어려서 그랬고 지금은 나이가 들었다기엔 , 그때에 어렸던 당신은 충분한 나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해가 어렵다. 당신이 휘둘렀던 수많은 힘과 상처주기에 충분했던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당신 아버지, 어머니, 동생 그리고 나. 이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언젠가의 해프닝으로 끝나거나 잊었을 일들. 어쩌면 어머니도 동생도, 당신도 잊었을 일들은 아직 나에게 말을 건다. 잊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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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 다들 너무 옛날 기억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차피 살아갈 날이 더 많은데 왜 이렇게 옛날 기억으로 서로를 미워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릇이 커서, 자비로워서 용서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나도 아직 밉다. 나도 진정한 용서라는 것은 모른다. 다만 그냥 그 감정에 파묻혀 살아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어른스럽다고 말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그럼 당신은 왜 아직 어른스럽게 지내지 못하는가 되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른스럽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냥 현실을 평화롭게 살고 싶을 뿐이다. 지겹고 지겨운 옛일은 다 잊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할 때면 내 안에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던 듯하다. 누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칼을 들었던 날이 선연하다고 했다. 누나가 나를 아끼는 마음을 알기에 말하지 못한 건, 솔직히 나는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어렸고, 겁에 질려있었다. 악다구니를 쓰는 엄마, 도와달라고 울부짖으며 문을 막는 누나,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구석에서 귀를 막고 울고 있는 나. 이 정도가 나의 기억의 단편이다. 울었던 나는 언젠가는 진정했고, 울음을 멈췄고, 다른 날도 자주 울었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 그날은 내가 어릴 적 수없이 울어재꼈던 수많은 날 중 하루였을 뿐이다. 나는 엄마에게도 누나에게도 솔직한 마음을 말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