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살아남아 해줬던 용서라는 것은

옥타비아 버틀러 - 킨

by 류서안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노예가 존재하던 과거로 끌려간다면.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결국 ‘자기 자신’으로 남을 수 있을까?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최근 완독에 성공한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Kindred)』을 읽으면서 생겨난 질문들이다. 책의 장르는 판타지에 가깝지만, 읽는 동안에는 판타지라기보다 오히려 현실에 더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평화로운 생일을 보내던 날, 갑자기 과거—흑인 노예 제도가 존재하던 시대로 워프하게 되는 ‘다나’. 그리고 그를 끌어당기는 존재가 자신의 조상인 ‘루퍼스’라는 소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시간 여행이 아니라 생존과 혈연, 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깊어진다.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은 무엇일까, 사랑을 받기 위해 왜 때로는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하게 될까, 그리고 이렇게 뿌리 깊은 인종에 대한 차별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걸까.

다나는 자유로운 현대인에서 순식간에 노예로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 간극 속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은 너무 날것이라서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라고?"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해."
다시 말해서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그는 언제나 미안해했다. 내가 용서하기를 거부한다면 이해하지 못하고 깜짝 놀랄 것이다. 갑자기 루퍼스가 어머니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이 났다. 부드러운 태도록 원하는 바를 얻어내지 못하면 야멸차게 대하던 모습을. 왜 안그러겠는가? 언제나 용서하는데.
- 킨(kindred) 본문 중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루퍼스의 말과 태도였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용서받을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용서하는 주체는 언제나 약자다. 진실로 미안해하고 사과하는 것은 그 진실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용서는 명확하다. 용서는 사랑에 기반한다. 사랑에 기반한 용서는 거짓일 수 없는 것이다. 거짓으로 용서를 받았다면, 당신은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죽지 않으므로 용서는 확실한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나 용서하는 사랑을, 그런 사랑을 모른다는 것 역시 용서받았다는 것이다. 선뜻 내어주는 진심으로 용서를 단정하지 말기를. 너의 한가닥 미안함에도 무거운 사랑과 증오를 품는 것이 용서임을 잊지 말기를. 읽는 내내 루퍼스에게 지울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되뇌었다.



루퍼스가 죽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다나가 워프해 그를 구해내는 장면들도 오래 남는다. 제목인 ‘Kindred’가 혈연을 의미한다는 걸 떠올리면, 결국 다나는 자신의 존재를 위해 그를 살려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가족애로 설명되지 않는다. 안쓰럽고, 동시에 이해할 수 없고, 때로는 미워지는 감정까지 섞여 있다. 혈연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사람을 묶어 둘 수 있는 것인지, 읽는 내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는 워프, 노예, 자유민, 도망, 백인, 글과 책, 편지 같은 키워드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 단어들이 쌓이면서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어떤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그 조건이 바뀐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읽고 나면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이 남는다. 그래서 더 오래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