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몸을 모른다.

리타 불윙클 - 헤드샷

by 류서안

말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세계, 주먹과 근육으로만 대화하는 복서들은 외롭다. 그리고 무서울 것 같다.


신입 사원일 때 회사 근처에 있던 복싱장을 동료들과 함께 다녔던 적이 있다. 회사원들을 상대해야 하는 복싱장은, 다이어트를 위한 복싱 프로그램을 짜서 가르쳤다. 근 1년 정도 다니자, 복싱장의 관장님은 나와 동료들에게 스파링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남을 때리기 싫은 만큼, 남에게 맞기도 싫었던 나는, 몇 달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함께 다니던 여자 동료와 경험만 해보라는 관장의 성화에 못 이겨 링 위로 올라갔었다. 관장님의 ‘잽 잽 원투‘에 맞춰서 시늉하다가, 동료가 아드레날린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내 헤드기어와 어께 사이로 꽤나 파워있는 잽을 날렸다. 마지못해 올라왔고, 시늉만 하던 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 비슷한 힘으로 상대편 동료에게 펀치를 날렸다. 그 이후로는 묘하게 승부욕이 올라온 눈빛을 보았고, 나 또한 그랬다. 이대로 링 위에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띵!’하는 라운드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려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링을 빠져나왔다. 그 이후로 복싱하더라도 링 위에 올라간 적이 없다. 사람을 때린다는 것은 꽤 위험하고 자극적인 일이다. 자극적이라 하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합법적인 쾌락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의 44페이지에 있는 ‘누구도 그 몸에 들어가 보지 않고선, 그 몸이 뭘 잘할지 모르는 법이다’라는 문장이 크게 와닿았다. 누구도 내가 내 몸으로 뭘 잘하는지 모르지만, 내 몸이 어떻게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는 것이 요즘 내가 깨달았던 바였다. 내가 어디가 아픈지 나도 모를 때가 많고, 나의 쉼이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는 것은, 역시 그 사람이 내 몸이 되어보지 못해서, 내가 얼마나 견디면서 살아내는지 모른다는 걸 서로가 이해해야 한다는 걸. 단순한 격투기나 육체 훈련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서로의 고통이나 회복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는 존재론적 한계를. 상대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는, 그가 잘하는 것, 아픈 것, 쉬어야 할 타이밍조차 온전히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소녀 복서들의 이야기는 단지 격투가 아닌, 고통과 회복, 자기 확신의 반복이었다. 몸으로 말하는 소녀들의 서사는 낯설지만 강했고,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