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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Oct 22. 2023

여전히 아름다운 수필가, 김순영          

《일하는 여성은 아름답다》를 읽고


 “예술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인생이라는 과실 속에서 무르익어 갈 뿐(피카소)”이라며 연륜을 곱게 물들여가며 글을 잘 쓰는 어른이셨던 수필가, 김순영. 그녀는 우체국장으로 정년퇴직할 때까지 직장인이자 주부로서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치열하게 글을 썼다. 다시 말하면 수필가로서의 삶을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잔잔하면서도 활기차게 채색한 문사였다.           

 수필집 6권중 《일하는 여성은 아름답다》는 57세 때 출간된 작품으로 삶의 깊이와 울림을 주는 인생관이 씨실과 날실로 엮여 읽는 이의 마음을 출렁이게 한다. 전체 69편의 글은 올드키즈의 변, 뛰지 말아라 밥 꺼진다, 만남에 대하여, 일하는 여성은 아름답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등 5장으로 구성되었다. 한 편 한 편이 그녀가 마련한 사색의 장으로 곳곳에서 알차게 여문 벼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예의범절이 무너지는 시대를 향하여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고, 이웃 간의 관계에 정성을 다하며, 풍속이나 지역의 역사, 산과 강의 노래에 흠뻑 빠져들게 한다. 때때로 선조들의 삶과 그들의 흔적을 찾아 감각화하고 정서화한다. 특히 수필가로서의 올곧은 자세를 어필한 부분에서는 느슨하게 풀어놓았던 펜대를 단단히 부여잡게 한다.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그렇게 쉬운 문학이 아니라면서 정선된 언어로 문학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자들이 첫눈에 알아보고 심판을 내리는 분야이기에 시나 소설을 먼저 배운 후에야 수필을 쓸 수 있단다. 따라서 철저하게 자기 관리와 감독을 하며 치열하게 쓰라고 외친다. 증명하듯이 그녀의 글도 폭넓은 자료조사와 깊이 있는 사고를 통해서 오래 달여진 쌍화차 같은 맛을 품어낸다. 때론 씁쓸하고, 텁텁하며, 때론 달콤하고, 진미가 나는.          

“나는 월등하게 뛰어난 문장력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러니 쉽게 수필을 쓰지 못한다. 누에가 고치를 지을 때 토하는 것처럼 슬슬 막힘없이 쓰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을 돌거나 몇 번씩 얽힌 실타래를 푸는 것 같은 안간힘을 써야만 한다. 그것은 마음은 크고 눈은 높은데 재주가 없어 따르지 못하는 나로서는 마땅히 넘어야 하는 고비인데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면역성이 안 생기는 그래서 매번 수난이 되고 있다. 그러나 너무 어려워 어물어물 꾀를 써 피해 넘기지는 않는다” 〈수필 「隨筆 斷想」 중에서 〉    

 문학은 논리보다는 감성이 우선하는 학문이므로 비논리성을 이해하는 공부가 필요한 사람이라며 끊임없이 공부하고 후학들도 그리하기를 권고한다.     

 “누기져 후줄근한 남루가 아닌 불분명한 단어의 나열로, 말의 낭비가 아닌, 언어의 표피가 아닌 본질이 만져지는 수필을 쓰는 것이 남은 내 운명이.”라는 고백은 안일하고 느긋했던 나의 자세를 곧추세운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아침저녁이다. 누구와 더불어 나의 이 정서를, 이 가을의 촉촉함과 서늘함과 약간의 허기짐을 채울 수 있을까? 이럴 땐 목울대를 따뜻하게 적셔주는 차 한 잔을 준비하여 가슴을 데워줄 수 있는 친구와 마셔야 한다. 화장이나 분장을 하지 않아도 좋을, 퀭한 눈, 후줄근한 맵시가 부끄럽지 않을 이를 떠올려 본다. 누가 있지? 김순영작가는 친구에 대하여 삼익우(三益友)와 삼손우(三損友)로 정리했다.     

 “줏대가 없이 무슨 말에나 지당하다고 대답하는 굽신거리기 좋아하는 사람,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마구 하는 불성실한 사람, 편을 잘 만드는 편벽한 사람을 친구 하면 뜻밖의 엉뚱한 화를 입는다. 아첨하지 않고 충직하며,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밝히되 사람을 저버리지 아니하고, 어떤 오해가 생겨 서로 소원해진 경우에도 결코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은 친구로 사귀어야만 한다.” 〈수필「친구와 배경음악」중에서〉      

 친구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극 전체를 살려주는 어디선지 들려오는 배경 음악 같은 것이라 했다. 이 순간에는 내 고향 진안을 나보다 더 잘 알려주는 작가가 나의 친구이지 않을까? 그녀는 묻힌 문화유산을 잊거나 잃지 않으려 보석을 캐내듯 정성을 기울였다. 숨겨진 시간을 찾아내 일광욕을 시키듯 진안의 대명사인 마이산의 역사를 건져 올렸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붓끝을 닮아서 문필봉, 바위산이어서 개골산,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 때는 용출산, 조선시대에는 속금산 등등 이렇게 많은 이름으로 불렸다. 


 “이성계는 우왕 6년에 운봉까지 쳐들어온 왜구를 토벌하고 전주를 향하던 중 기도의 명산 마이산에 들러 기도를 올리고 있었는데 꿈에 신인이 나타나 금척을 주면서

‘장차 이 금척으로 삼한三韓 강토를 척량尺量토록 하라’고 하였다.” 〈수필「마이산과 몽금척」중에서〉     

 이는 몽금척과 관련하여 박혁거세가 신라를 세운 것처럼 조선 건국도 천명에 의한 것임을, 조선 창업이 정당함을 강조한 일화이다. 결국 건국이 되었으나 오백 년 역사를 뒤로 하고 국운이 쇠약해져 나라를 빼앗기게 되자 고종은 태자 순종에게 마이산을 본 딴 태자모를 만들어 쓰게 하면서 건국 시조 태조의 기상을 되찾기를 소원했단다. 이뿐이랴 마이산에 가면 중국의 여류 시호 이청조와 버금가는 조선의 이청조라 불린 삼의당과 그의 남편인 담락당을 기리는 시비가 있음을 다정한 친구가 되어 세세히 들려준다. 

 김순영 수필가는 여전히 나이를 먹지 않는 예술가로, 떠났으나 돌아와 중년의 나에게 중후한 목소리로 삶을 누빈다. 속살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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