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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Nov 18. 2023

삶에서 반추하는 문학과 법의 *아니리

《말을 잃고 말을 얻다》를 읽고

 삶에서 반추하는 문학과 법의 *아니리 

   (판소리에서 창을 하는 중간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일상적인 말투로 엮어나가는 사설.)     

 어릴 적 고향 마을에는 점방이 두 개 있었다. 막걸리 한 주전자, 환희 담배 한 갑, 성냥 한 갑 등은 윗뜸에 있는 점방을 이용했고 밀가루나, 갱엿, 사카린 등은 아랫뜸 점방을 이용했다. 그곳엔 어린 우리들이 좋아하는 눈깔사탕, 달콤한 팥 맛이 도는 하드(아이스크림), 쫀드기 등 먹을거리도 풍성했고 풍선이나 뽑기, 고무줄 등 놀잇감도 많아 어린 날의 나에게 점방은 신비스럽고 오묘한 마술가게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점방’이란 말은 마냥 설레는 마법의 단어다. 이 단어로 인해 어렵고 복잡한 법의 세계가 친숙하고 친근하게 진열된 수필집을 만났다. 《말을 잃고 말을 얻다》이다.     

 삼거리에서 점방을 운영하는 어머니한테 가난과 고난의 덕목을 이수한 조재형은 수사관, 법무사, 시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수필집 《말을 잃고 말을 얻다》는 ‘지나간 오늘’, ‘법과 문학 사이에서’, ‘그놈의 인권’, ‘법무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60편의 수필은 「삼거리 점방」으로 시작된다. 문학의 원천이었을 고향과 어머니와 형제와 이웃들의 이야기가 애절하게 그려져 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생계를 꾸려가는 어머니의 애환과 억척스러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손이나 이웃들에게 잠자리나 먹거리를 넉넉히 제공한 푸근함과 정이 삼거리 점방 가판대에 있다. 읽다 보면 우리를 키워낸 고향과 어머니와 형제들, 이웃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무엇보다 멀고 낯설게 여겨지던 법의 세계를 문학으로 버무려 놓아서 문학과 법의 거리감이 해소된다. 작가는 사유를 키우는 힘을 문학에서 찾는다. “악은 악에서 나온다기보다 평범한 사람의 무사유에서 나온다.”는 일침을 가하며 깊이 사유하는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십수 년을 법전 힘을 빌려 범인을 쫓던 수사관에서, 사전의 힘을 빌려 은유를 좇는 시인으로” 문학의 쓸모를 찾아내 법무사의 터전에 적용한다. 비유가 주는 유익이 법이 집행되는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사유하라고 역설한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목숨 한 그루 꺾는데 몇 발의 저주가 필요한지. 하지만 나는 모릅니다. 기도를 사다리로 사용하면 신이 낮은 데로 임할 수 있는 줄은. 나는 알고 있습니다. 어떤 말을 비수로 꽂으면 라이벌이 폭삭 무너지는지. 하지만, 나는 모릅니다. 숲 속의 새들은 어디서 울음을 채워 오는지.”〈「신지식인」중에서〉      

 작가는 수사관과 법무사로서 만났던 여러 유형의 삶들을 시인의 눈으로 읽어준다. 때론 측은한 마음으로, 신의 자비를 의존한 너그러움으로, 그늘에 빛을 모아 보내기도 하고 약자의 약점을 보완하기도 한다. 날카롭고 낯설며 멀고 어려운 법의 세계를 예리하면서도 따스한 시인의 눈으로 재해석하면서 삶의 자세를 점검하게 한다. 약자들의 아픔과 설움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시인에게서 그 옛날 점방에서 피어나던 이야기들의 애환을 비추어 볼 수 있다. 수사관에서 법무사로, 다시 더 낮은 자세로 시인의 마음으로 약자들의 비극을 어루만지는 점방인 셈이다.

 이 수필을 읽는 독자는 어떤 말을 잃어야 하고 무슨 말을 얻어야 하는지 사유하며 ‘오늘을 사는 어제의 당신’이 될 것이다. 우리의 철학은 안녕한지 멈추어 살펴볼 수 있는 공간, 《말을 잃고 말을 얻다》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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