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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른의 '하도 좋아'

by 아침햇살

몇 해 전,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린 ‘청소년과의 대화’ 프로그램에 학생들과 함께 발표자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날의 무대는 단순한 문학 행사에 그치지 않았다. 나에게는 오래 묻혀 있던 귀한 보물을 캐내는 자리였다.

함께 무대에 선 서연이와 아인이는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이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무적의 중딩’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그 아이들은 청량한 빛을 품고 있었다. 사춘기의 불안과 혼란 대신, 새벽 안갯속 옹달샘처럼 맑고 신비로운 기운이 넘쳤다. 학원이란 갯벌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고, 제 마음이 가는 대로 기량을 닦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들의 웃음은 연둣빛 봄날 아침의 숨결 같았고, 눈빛은 숲 속에 일렁이는 바람처럼 시원했다.

그날 아이들이 준비한 주제는 ‘내 인생의 책 한 구절’이었다. 서연이와 아인이가 선택한 글은 놀랍게도 유명 시인의 작품이 아니라, 바로 할아버지가 쓴 시, 「하도 좋아」였다. 청소년이 발표 무대에서 할아버지의 시를 꺼내 들고, 그것을 인생의 좌우명처럼 여긴다는 사실은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하도 좋아」라는 제목에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정신이 담겨 있었다. 이영규 시인의 어머니, 곧 아이들의 증조할머니인 최판임 여사가 생전에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저 좋다’가 아니라, ‘너무 좋아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좋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1900년에 태어나신 할머니는 훈장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자를 익히고 국문도 깨쳤다. 일제 강제 점령기의 모욕과 참담함, 해방 후의 혼란, 6·25 전쟁의 아픔까지 온몸으로 겪어내신 분이었다. 전쟁 중에는 참전했던 셋째 아들을 잃는 아픔도 감내해야 했다. 그러나 한숨만으로 삶을 보내지는 않았다. 남은 자녀들이 있기에 내일을 바라보며 고통을 이겨냈다. 세월이 깊어질수록 원망 대신 “하도 좋아, 하도 좋아”를 되뇌며 자손들을 이끄셨다. 고난을 정화하여 희망으로 바꾸는 힘, 그것이 바로 진짜 어른의 품격이 아니었을까. 그 어른의 품성을 이어 닮은 이가 학생들의 할아버지, 곧 나의 작은아버지였다.

작은아버지는 젊은 시절 운암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었다. 이웃의 소를 몇 해 동안 길러주고 송아지 한 마리를 얻었단다. 그 송아지를 할머니께 드리기 위해 운암에서 출발하여 진안 좌포까지 육십 리 길을 걸어서 온 적이 있었다. 또 어느 해 겨울, 기력이 쇠약해진 할머니를 걱정하다 잠이 들었는데 지렁이를 달여 드리면 나을 거라는 꿈을 꾸셨다. 곧장 그 먼 길을 달려와서 두엄자리 밑을 파헤치고 지렁이를 잡아 달여 드렸단다. 할머니는 그것을 드시고 병환을 이겨내셔서 여든아홉까지 장수하셨다는 전설 같은 일화도 있다. 작은아버지는 효성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시대의 문화를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사명감으로, 카메라와 녹음기를 빌려 가족의 삶을 남겼다. 덕분에 우리에게는 어린 시절의 사진과 목소리가 남아 있고, 밤골 아주머니의 타령과 할머니의 구음은 귀한 민속 자료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작은아버지는 여든여덟의 노구가 되셨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에서도 손녀들의 발표를 응원하러 문학관을 찾으셨다. 그 자리에서 서연이와 아인이는 할아버지의 시 「하도 좋아」를 낭송했고, 할아버지와 함께 책을 소리 내어 읽었다. 작은아버지는 손녀들의 목소리에 눈시울을 붉히며 말씀하셨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이렇게 책을 가까이 두고 살아가는 학생들이 있고, 그것을 권장하는 단체가 있으니 이 나라는 승승장구할 것입니다.”

청중은 일제히 박수로 화답했다. 이어 작은아버지는 또 말씀하셨다.

“제가 젊었을 때부터 매일 읽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입니다. 여기 계신 학생들과 학부모님과 시민 여러분들도 함께 일고 나누며 자신을 빛나는 보석처럼 만들어 가시길 기대합니다.”

그날 이후로 나도 《인생독본》으로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은 곧, 할머니의 ‘하도 좋아’ 정신을 이어가는 길이기도 했다.

나는 종종 묻는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어른은 나이를 더한 존재가 아니라, 세월을 살아내며 정신을 빚어낸 존재다. 고난 속에서 허우적대며 주변인들까지 수렁으로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진흙 속에서도 피어오르는 연꽃처럼 삶을 정화하여 후대에 맑은 마음을 건네줄 수 있는 자, ‘하도 좋아’ 같은 정신력으로 세대를 이어주는 언어의 힘을 품은 자, 작은아버지처럼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며 따뜻한 세상을 물려주려는 자, 바로 그러한 삶 속에서 어른다움은 빛난다.

문득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본다. 오늘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가. 혹여 권위만 내세우고 책임을 외면하는 빈 껍데기의 어른은 아닌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겸허히 고개를 숙인다.

할머니의 “하도 좋아”라는 말은 삶을 견디는 힘이었고, 그 정신을 이어가려는 작은아버지의 삶은 기록으로 남아 우리를 일깨운다. 그리고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는 미래를 향해 열린다. 그 모두가 하나의 길이 되어 내 앞에 펼쳐진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어른다움을 다시 배운다. 고난을 발판 삼아 희망을 건네는 힘,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얼굴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읊조린다.

“하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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