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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자장가

햇살이를 기다리며

by 아침햇살


달빛이 창가를 타고 내려와 방 안을 은빛으로 물들이면, 세상은 조용히 숨을 고른다. 작은 숨결 하나, 그 위에 얹히는 나지막한 가락. 그건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오래된 사랑이 시간의 강을 건너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 선물이다.

요즘 나는 자장가를 연습한다. 결혼 4년 차인 딸이 오는 11월에 첫 아이를 낳는다. 기다리던 첫 손주를 품에 안으면 어떤 기분일까. 그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설렘이 하루하루를 채운다. 한편, 딸이 어렸을 때처럼 잠투정이 심하면 어떻게 재울까 하는 고민도 생겼다. 그러니 자장가 한 곡은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이 오는 아이의 숨결 위에 얹는 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달콤한 수면을 위한 마술같은 가락일테니 정성을 들여 자장가를 부르리라.

노랫말도 가락도 밝고 포근한 곡을 찾다가 모차르트의 자장가가 마음에 들어왔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양도 다들 자는데…”가락을 흥얼거리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잔잔해지고 미소가 번진다. 이런 노래라면 손자도 쉽게 잠들 것이다.

그러다 나의 유년이 떠올랐다. 나는 어떤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었을까. 언니의 입에서 흘러나온 유행가였을까? 작은아버지가 부는 하모니카 소리였을까. 아니면 감나무 위 까치의 울음? 봉숭아 씨알이 톡 터지는 소리였거나 채송화 씨앗이 튀는 소리였을까? 이 모든 소리와 풍경이 나의 자장가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엄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엄마는 우리 재울 때 어떤 자장가를 불러주었우?”

엄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그 시절은 바빠서 자장가를 많이 부를 겨를이 없었지.”

그러더니 이내 산골 가락을 흥얼거리셨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자장자장 잘도 잔다.

논둑 따라 달이 온다

솔바람이 불어와서

봉숭아꽃 고개 젓네

시냇물도 잠이 들고

소 울음도 멎었구나

우리 아기 예쁜 꿈에

별빛들이 내려앉네

논둑 따라 달이 온다


그때 처음 알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이렇게 따스하고 잔잔했다는 것을. 등을 다독이던 손길은 말보다 강한 노래였다. 세월이 흘러도 그 부드러움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그렇게 자장가를 배웠다.

나도 아이들을 키울 때 슈베르트와 모차르트를 틀어놓고 재우기도 했다. 지능을 높인다는 말에 혹했지만, 결국 아이를 잠재운 건 내 품에서 흐르던 낮은 흥얼거림이었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자장자장 잘도 잔다. 논둑 따라 달이 온다 . . .우리 애기 잘도 잔다…” 하고 부르던 엄마표 자장가가 아이를 더 깊이 잠들게 했다.

할머니와 엄마가 내게 불러준 노래가 나를 거쳐 딸에게로, 이제 손자에게로 흘러가려 한다. 세상의 자장가는 그렇게 이어진다. 음표보다는 마음으로, 기술보다 체온으로, 한 세대에서 또 한 세대로.

자장가는 단지 잠을 위한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고 사랑이며, 생애 가장 조용한 기도다. 품에 안긴 아기를 향해 노래하는 일은 마음을 건네는 일이다. 자장가는 세대를 건너 흐르는 사랑의 숨결이며, 조용한 유산이다.

곧 나는 손자를 품에 안고 달빛이 창가에 내리는 밤, 엄마표 자장가 가락위에 나의 추억을 얹어 노래할 것이다. 그 순간, 내 속에는 엄마의 자장가도, 할머니의 타령도, 내 딸의 사랑도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자장가는 이렇게 우리를 재우고, 우리를 기억하게 한다. 잠든 아이의 숨결 위로 오늘도 내일도 사랑의 노래가 천천히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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