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피해 장수 방화동계곡을 찾았다. 한 달 가까이 비를 만난 적이 없어 냇물은 목말라 있었지만, 방화동의 물결은 여전히 차갑고 깊었다. 다슬기가 슬금슬금 산책하듯 기어 다니는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공기가 서늘하게 콧속으로 흘러들고 마음까지 맑아진다. 징검다리를 건너니 물안개 속에서 작은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용소였다. 햇빛이 작렬하는 한낮에도 몸을 담그기 망설여질 만큼 시린 물줄기였다. 심한 가뭄에도 굴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이 신비롭다. 덕분에 한낮의 무더위는 한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밤이 되자 물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울렸다. 텐트촌을 지나 불빛이 닿지 않는 길을 한참 올라 노루목 고개에 이르자, 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목이 아플 만큼 고개를 젖히니, 까만 하늘 위로 그날의 꿈이 다시금 내려앉는다.
십팔 년 전, 여든넷의 나이로 아버지는 소천하셨다. 팔 남매 중 막내였던 나를 유난히 아껴주시던 분. 그 사랑이 깊었던 만큼 상실의 크기도 컸다. 길을 걷다 중절모만 보여도, 백구두를 신은 뒷모습만 스쳐도 나는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달려갔다. 그러나 곧, ‘아, 돌아가셨지…’ 하는 허망한 깨달음에 다리가 풀리곤 했다. 그렇게 무너져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기적처럼 꿈속에 다시 나타나셨다.
토방에 반짝이던 구두 세 켤레, 문을 열자 청년의 얼굴로 선 아버지가 계셨다. 주름 하나 없는 그 얼굴에서는 환한 빛이 발산되고, 방 안은 숲의 향기로 가득했다.
나는 숨이 차도록 “아버지!”를 연거푸 불렀다.
그러자 아버지는 고요히 웃으며 단 한 마디를 남기셨다.
“괜찮아.”
그 말은 생전에 병상에서도, 내 어려운 날마다 등을 두드리며 해주시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가 여전히 살아계시는데 내가 왜 슬퍼했을까.’
문을 닫고 마당으로 내려서자 풀벌레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은하수가 한가운데 흐르고 있었다.
백조, 거문고, 독수리… 반짝이는 별들은 마치 아버지의 눈빛처럼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다, 괜찮게 살아라.”
그날 이후 별은 내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별빛을 통해 아버지는 여전히 내 곁에서, 물처럼 흘러오는 위로로 살아 계셨다.
나는 그 별을 바라보며 다짐한다.
슬픔에 잠기지 않고, 아버지의 말처럼 괜찮게 살아가야 한다고.
오늘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것은 아버지가 남기신 내 하늘이다.
등기부에 오르지 않은, 그러나 누구보다 값진 유산.
총총한 별들 사이로 아버지의 눈빛이 반짝이고, 그 빛이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별은 다시 내 길을 밝혀준다.
그러나 별은 하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방화동 계곡의 차가운 물결 속에서도 별빛은 반짝였다.
가뭄에도 꿋꿋이 흘러내리는 용소의 물소리는, 아버지의 “괜찮아”를 닮아 있었다.
물은 흘러가며 별빛을 품고, 별빛은 물결 속에서 다시 나를 비춘다.
그래서 나는 안다.
삶이란, 물과 별빛처럼 흘러가며 서로를 비추는 영원의 대화임을.
죽음은 그 대화의 쉼표일 뿐, 끝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별이 되고, 다시 누군가의 물 위에서 반짝이며 흐를 것이다.
“별은 스러지지 않는다. 다만 물로 스며들 뿐이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괜찮다.
40도를 웃도는 무더위를 피해 장수 방화동계곡을 찾았다. 한 달 가까이 비를 만난 적이 없어 냇물은 목말라 있었지만, 장수 방화동 계곡물은 여전히 차갑고 깊었다. 다슬기도 슬금슬금 산책을 하는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시원한 공기가 콧속으로 한 줄기 흘러 들어오고, 몸까지 서늘해진다. 물안개가 오르는 징검다리를 건너니 작은 폭포가 있다. 용소란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에도 몸을 담그기 망설여질 만큼 시린 물줄기였다. 심한 가뭄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모습이 신비스럽다. 덕분에 한낮의 무더위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밤이 되자 물소리는 더욱 우렁차게 울린다. 텐트촌을 지나 불빛이 닿지 않는 길을 한참이나 오르다 보니 노루목 고개에 다다랐다. 몇 발짝을 옮겨 놓고 올려다본 하늘은 별이 총총 박혀 있었다. 목이 아플 만큼 이마를 젖히니, 까만 밤하늘 위로 그날의 꿈이 다시금 내려앉았다.
십팔 년 전, 여든넷의 나이로 아버지는 소천하셨다. 팔 남매 중 막내였던 나를 유난히 아껴주시던 분이셨다. 그 사랑이 깊었던 만큼,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의 상실은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길을 걷다 중절모만 보여도, 백구두를 신은 뒷모습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아버지!” 소리치며 달려간다. 그러나 곧 ‘아, 돌아가셨지…’ 하는 허망한 깨달음에 다리가 풀리곤 했다. 그렇게 무너져 지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기적처럼 내 앞에 다시 나타나셨다.
주말 저녁, 엄마를 만나러 친정에 갔다. 토방에 반짝이는 구두 세 켤레가 놓여 있어 고개를 갸웃했는데, 방문을 열자 놀랍게도 아버지가 계셨다. 생전에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주름 하나 없는 청년의 얼굴, 그 얼굴에서 환한 빛이 발산되었다. 숲 속의 상쾌한 향내가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책상에 둘러앉아 회의하던 세 분에게서도 눈부신 빛이 뻗어 나왔다. 나는 반가움에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렀다. 목이 메게 연거푸 부르니 아버지는 그저 환한 미소를 띠신 채, 아무 일도 없었던 표정으로, 모든 걱정을 내려놓으라는 듯, "괜찮아"짧게 대답하신다. 넉넉하고 단단한 어투였다. 생전에 병상에서 하시던 마지막 말씀이기도 했던 "괜찮아"그 말,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괜찮아?"하고 등을 쓰다듬으며 했던 그 말의 톤으로 별일도 아닌데 웬 호들갑이냐는 듯.
그 모습을 본 순간, ' 아버지가 살아계시는데 내가 왜 슬퍼했지? '라는 생각이 들어 민망해졌다. 마음이 놓여 문을 닫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대문 없는 마당에는 풀벌레 울음이 파도처럼 일렁이며 가득 들어왔다. 쏴아아. 안도의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은하수가 한가운데 펼쳐져 있다. 백조, 거문고, 독수리... 온갖 별자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 하늘 좀 봐. 온통 보석들이야!”
내가 감탄하며 외친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꿈이었다. 꿈이었으나, 현실보다도 뚜렷했다. 아버지의 젊은 얼굴과 미소, “괜찮아”라는 목소리는 여전히 내 귓전에 울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별빛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별은 아버지가 건네는 안부이자, 또 다른 이름의 위로자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꿈과 별빛을 통해 아버지는 여전히 내 곁에서 말없이 응원하며 힘이 되어 주신다. 나는 그 별빛을 바라보며 매번 다짐한다.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아버지가 남긴 말씀처럼 괜찮게 살아가야 한다고.
오늘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것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내 하늘이다. 그곳의 별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등기부등본에 등재되지 않은, 그러나 분명히 내 삶을 채워주는 보물 창고, 소중한 유산이다. 총총히 박힌 별들 사이로 아버지의 눈빛이 반짝이고, 그 빛이 내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별은 다시 길을 밝혀 준다.
그러나 별은 하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방화동 계곡의 맑은 물줄기에도, 가뭄에도 꿋꿋이 흘러내리던 용소의 물소리에도 별빛은 빛나고 있었다. 차갑고 깊은 물결은 아버지가 늘 내게 들려주시던 말처럼 단단했고, “괜찮아”라는 위로를 변함없이 전해주고 있다. 별빛을 머금은 계곡물이 하늘과 땅을 이으며 내 안에서 함께 울린다. 그래서 나는 안다. 삶이란 결국 물과 별빛처럼 때론 흐르다가 멈추기도 하고 반짝였다가 쉬기도 하면서 당신과 내가 서로를 비추며 이어가는 영원의 대화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