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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도 무사히

언니의 일상

by 아침햇살

그녀는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본다. 여섯 시 오십 분.

“이럴 수가, 분명 여섯 시에 자명종을 맞춰놨는데…”

부리나케 일어나니 여기저기 뚝뚝 소리가 나며 몸이 욱신거린다. “이 정도면 일기예보 따위 안 봐도 궂은 날씨 확정이지.” 그녀는 중얼거리며 고양이 세수를 하고 손가락에 물을 묻혀 머리를 슥슥 빗는다.

화장은? “차에서 하자.” 가방을 챙기며 오늘도 속으로 외운다. ‘제발 오늘도 무사히…’ 어르신들 사고 없이 넘어가길 바랄 뿐이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진안 노인 전문 요양원.’ 말의 귀처럼 쫑긋 솟은 마이산 자락에 있다. 봄이면 새순 돋는 산세에 감탄하고, 벚꽃 흩날리면 셔터 누르던 길. 여름엔 푸른 들판, 가을엔 황금빛 벼 이삭에 가슴이 뛰곤 했다. 겨울엔 눈길 미끄러워 버스에 몸을 맡기던 길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길은 더 이상 풍경의 길이 아니다. 6개월째, 여유를 잃어버린 전쟁터 출근길이 되어버렸다.

퇴직 전에 ‘보람 있는 일’을 해보겠다고 자원한 곳이었다. 호스피스 교육까지 받고 ‘평안한 이별’을 꿈꾸며 들어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약 줘! 약 줘!”

“집에 갈 거야!”

“내 돈 내놔!”

욕설이 오가고, 대소변을 치우고, 싸움을 말려야 했다. 그녀가 꿈을 꾸던 아름다운 이별은 첫 날에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여기는 삶의 마지막 페이지가 아니라, 삶과 싸움의 최전선이었다.

꽃을 좋아했던 그녀는 보건소에 있을 땐 아침마다 꽃밭을 가꾸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꽃향기를 맡을 틈조차 없다. 지각은 용납되지 않는다. 책임자로서 늘 20분 일찍 출근한다. 오늘도 무리하게 달려서라도 8시 20분 전에 요양원에 도착했다.

약 챙기고, 식사 수발하고, 생신 잔치 챙기고, 미술·음악치료까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고, 오후 4시면 ‘순찰’ 타임이다.

그때였다.

“죽 올 때 되었나 봐요?”

그녀가 평소처럼 인사하자, 암 말기 환자 어르신이 번개처럼 눈을 치켜뜬다.

“뭐? 죽을 때 됐다고?? 죽을 때 됐다고!!!”

아뿔싸. 간식 ‘죽’이 아니라 인생의 ‘죽음’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그녀는 급히 달래며 웃는다. “아이고, 어르신~ 하루가 휙휙 지나가요. 오늘은 영양죽이 참 맛있네요. 어여 드셔요.”

다행히 어르신은 금세 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우신다. 그제야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정신적 긴장감이 육체노동보다 더 무겁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하루 종일 뛰고, 닦고, 달래고… 퇴근 후에는 쓰러져 잠들었다. 그런데 낮에 그 어르신이 반듯하게 누워 계시는 꿈을 꾸었다. 심장이 철렁해 그녀는 다음날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방긋 웃으며 맞이해주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어르신, 사랑해요. 간밤에 잘 계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어르신들, 제발 오늘도 끝까지 무탈하시길…”

하지만 사실, 무사히 지나가야 하는 건 어르신들만이 아니다. 간호사와 요양보호사,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이기도 하다. 노인 인구는 점점 늘어가고, 돌봄의 현장은 숨 돌릴 틈이 없다. 누군가는 이 고단한 현장을 ‘마지막을 준비하는 곳’이라 부르지만, 이곳은 마지막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치열한 생의 현장이라는 것을 그녀는 체감한다.

얼마 전 만성질환으로 입원하셨던 어르신이 3년을 요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서울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드렸는데

“내가 바빠서 못 내려갑니다. 어차피 서울에서 초상을 치러야 하니 영구차로 보내주세요.”

세상에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임종도 못 지켰는데 이게 웬 말인가. 멍하니 망자를 보며 대신 울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론 어르신들이 썰렁한 병실에서 홀로 떠나시는 경우만큼은 없게 하려고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그녀의 소망은 단순하다. 눈 뜨는 이들에게는 하루의 빛을, 눈 감는 이에게는 평안한 안식을, 그리고 돌보는 이들에게는 생명에 대한 존엄과 웃을 수 있는 여유가 허락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도 무사히, 또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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