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일상
“드르륵, 드르륵.”
점점 가까워 오는 소리에 그녀는 조제하던 약봉지를 내려놓고 보건소 문을 열어 드린다.
한 달에 한 번 약을 타러 오는 휠체어 부부다. 남편은 뇌졸중으로 15년째, 아내는 근육 위축증으로 10년째다. 이 부부를 볼 때마다 치료를 해 주는 것은 자신이지만, 정작 위로를 받고 치유되는 쪽은 자기 쪽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금방 텃밭에서 뜯어 왔어유.”
김여사님이 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수줍게 웃는다. 여리고 싱싱한 상추다. 그냥 씻어 비벼 먹어도 최고일 것 같은 풋풋한 빛깔이다. 불편한 몸으로 이 상추를 심고 가꾸느라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을까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김여사가 말을 잇는다.
“사진 값이어요. 지난번에 사진을 하도 예쁘게 박아줘서 겁나게 감사허거든요. 선생님 사랑엔 택도 없지만 맛나게 드셨으면 좋겠구먼요.”
지난달 이들이 보건소에 왔을 때였다. 그날따라 강바람이 세차게 불고 진눈깨비까지 흩날렸다. 치료를 끝낸 후, 휠체어를 밀며 4km를 가야 하는 그들은 서로 장갑을 챙겨 끼워주고 목도리를 다시 둘러주며 한참 만에야 단장을 마칠 수 있었다. 다른 직원이 출장만 가지 않았어도 그녀가 직접 태워다 드렸을 텐데, 자리를 비울 수 없어 그냥 보내야만 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도 이들 부부는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밝은 얼굴로 서로의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상대를 먼저 챙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따끈한 커피를 대접하며 사진을 찍어 드렸다. 처음엔 “무슨 사진이냐”며 손사래를 치셨지만, 막상 카메라를 들자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다정한 눈길을 나누는 것이 아닌가. 아이처럼 기뻐하면서…
일주일 뒤 사진을 크게 인화해 드렸을 때, 두 분은 “몇 년 만에 같이 찍은 사진이냐”며 기대 이상으로 좋아하셨다. 그 후 도회지에 나가 있던 그들의 자녀들이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그녀를 찾아와 인사를 하곤 했다. 사진 한 장에 대한 감사치곤 오히려 과분한 대접이어서 그녀는 조금 쑥스러웠다. 그런데 오늘은 아직접 키운 상추 선물이라니.
마침 점심시간이다. 평소라면 가까운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이 상추를 휠체어 부부와 함께 먹고 싶어졌다. 부리나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주방 한쪽 작은 냉장고에서 고추장과 참기름, 깨소금을 꺼낸다. 비상 근무 때를 대비해 늘 준비해 두었던 것들이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부부는 신세 지는 게 미안하다며 극구 사양한다. 신체적 불편함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운, 깔끔한 성격의 두 분이었다.
“식사를 같이 안 하시면 다음부턴 사진 안 찍어 드릴 거예요.”
농담 반 협박 반으로 부부를 주방으로 모신다.
아기 상추의 부드러움만큼이나 여린 두 분의 심성을 떠올리며, 그녀는 사랑이란 갖가지 야채와 양념을 넣어 골고루 비벼 먹는 상추비빔밥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어우러져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공중보건의로 와 있는 젊은 의사 선생님도, 치과 간호사도 모두 벌건 고추장을 입가에 묻히며 맛있게 먹는다. 늘 둘이서만 간단히 끼니를 때우던 휠체어 부부도 “여럿이 먹으니 꿀맛”이라며 웃는다.
식사 후, 커피 한 잔을 나누며 기념사진을 찍는다. “찰칵.”
아내의 입가에 묻은 고추장을 남편이 투박한 손으로 닦아준다. “찰칵.”
남편의 눈곱을 아내가 휘어진 손가락으로 조심스레 떼어낸다. “찰칵.”
오늘은 사진이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어서였을까, 두 분의 얼굴이 더욱 볼그레해졌다. 사랑스러운 기운이 얼굴에 꽃물처럼 번졌다. 아쉬운 듯 몇 번이나 감사 인사를 건네며 두 분은 여전히 손을 꼭 잡은 채로 보건소를 나선다.
그 뒷모습 위로 또 하나의 사진이 찍힌다. 그녀의 마음속에 남은 휠체어 부부의 넉넉한 사랑이 한 장의 사진처럼 담긴다.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