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드립니다! 따뜻하게 안아드립니다!”
어느 겨울, 온 가족이 시내 영화 거리를 거닐며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있을 때였다. 차 없는 거리에서 남학생 둘이 “따뜻하게 안아드려요”라는 팻말을 들고 서서 소리치고 있었다. 딸은 깔깔 웃으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하고,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칼바람에 잔뜩 웅크리고 걷던 우리 내외도 어린 학생들의 따뜻한 웃음과 용기가 예뻐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여학생들이 달려와 안기며 터뜨리는 웃음소리, 중년 아주머니의 넉넉한 품에 안긴 학생의 소박한 웃음소리,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웃음소리 속에 내 마음도 잠시 포근해졌다.
그런데 초로의 취객이 다가와 삿대질하며 고함을 쳤다.
“학생들이 할 일 드럽게 없네! 이놈들아, 집에 가서 공부나 해. 이 추위에 공부는 안 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같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그 순간, 안도현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취객의 귀에 읊어대고 싶었다.
포옹(抱擁)이란 단순히 품에 안는 행위일 뿐 아니라, 남을 너그럽게 품어주는 마음까지를 뜻한다. 형식적인 포옹일지라도, 자꾸 안아주다 보면 마음도 어느새 보름달처럼 둥글어지지 않을까. 그날 이후 나는 종종 포옹의 의미를 곱씹곤 했는데, 올 한가위에 그 두 가지 의미를 함께 실천하게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해 놓고, 온 가족이 안방에 모였다. 허리가 굽은 아버님의 얼굴은 더욱 야위어 보였다. 며칠 전 폐렴으로 고생하셨으니 회복이 덜 되어 그런 듯했다. 어머님의 그을린 얼굴, 깊게 파인 주름살은 내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다.
우리는 예년처럼 아버님과 어머님을 중심으로 원을 이루어 추석 예배를 드렸다. 부모님의 건강을 위한 기도, 멀리 떨어져 만날 수 없는 시누이 가족을 위한 기도, 육 남매와 그 자녀들의 건강과 앞날을 위한 기도… 마지막으로는 서른일곱 먹은 막내 도련님의 결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 기도에 어머님은 연신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셨다.
그때 아주버님이 제안하셨다.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서로 한 번씩 안아 드립시다.”
작년 길거리에서 보았던 운동을 명절에 하게 될 줄이야. 갑작스러운 제안에 모두가 당황했다. 팔순의 아버님은 얼른 자리를 피하려 하셨지만, 아주버님이 먼저 다가가 힘껏 안아드리고는 모셔왔다.
“별 걸 다 하라 하네.”
말씀은 그렇게 하셨지만, 손자·손녀를 안아주실 때는 “건강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 덕담도 잊지 않으셨다. 웃으시는 얼굴에 주름살마저 풀리는 듯 보였다.
어머님 차례가 되자 아버님은 고개를 돌리며 피하려 하셨다. 결국 아주버님이 손을 잡아 어머님께 이끌자, 아버님은 어쩔 수 없이 안아드리셨다. 얼굴은 외면하고 연신 “허 참, 허 참.”하며 헛기침을 하셨지만, 그 쑥스러움조차 귀여워 보였다.
며느리 차례에는 손만 내밀어 안는 시늉을 하다가 얼른 나가셨다. 그때 우리 세 며느리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님, 사랑해요!”
발걸음을 멈추신 아버님은 잠시 주춤거리다 보름달 같은 웃음을 쏘아 올렸다.
“허허허 허, 그려. 사랑혀.”
그 목소리는 떨렸으나, 그 한마디가 무엇보다 값졌다. 처음으로 입을 열어 표현해 보는 사랑, 엄하시고 말씀이 없으셨던 아버님이셨기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방에 남아 있던 우리는 한바탕 웃으며 서로를 안아주었다. 훌쩍 커버린 아들과 딸 차례가 되었다. 열다섯, 키 173cm가 된 아들을 안으려니 나는 고목에 매달린 매미처럼 작아졌다. 예전엔 졸졸 따라다니던 아들이었지만, 이제는 방문을 걸어 잠그는 사춘기 소년이 되어 있었다.
“아들, 지금처럼만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살자.”
내 말에 아들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마치 찐빵 속 소처럼 깊이 파묻히는 순간이었다.
딸과의 포옹은 눈물이 앞섰다. 자립심을 키워야 한다며 냉정하게 대하던 나 자신을 반성했다.
“엄마 마음 알지? 사랑해, 딸.”
촉촉이 젖은 눈빛이 서로의 마음을 말해 주었다. 방의 온도는 점점 뜨거워졌다. 온 가족의 체온이 모여 섭씨 ‘따끈따끈한 온기’로 가득했다.
몇 해 전부터 퍼진 ‘안아 주세요(Free Hugs)’ 캠페인을 그저 젊은이들의 문화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번 명절에 나눈 포옹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잊지 못할 따뜻한 포옹, 온 누리를 감싸는 듯한 넉넉한 포옹, 가을 햇살처럼 맛있는 포옹이 우리 집안에 꽃물처럼 번졌다.
그리고 지금도 아버님의 서툴지만 보름달 같은 화답이 귀에 선명하다. 이 한마디가 바쁜 일상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가장 뜨거운 위로다.
“허허허, 그려. 사랑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