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운 그녀들

by 아침햇살

귀여운 그녀 1


“야아아아,야아,야, 내 나이가 어때서.” 따라 부르는 소리가 경쾌하다. 에어로빅 시간이다. 양손을 펼치고 오른쪽, 왼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아양 떠는 부분도, 떼창을 하는 부분도 그녀들을 웃게 만드는 시간이다. 몸치·박치인 내가 춤을 추다니,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며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그러나 재빠르게 움직이려 애를 쓰는데, 허둥지둥, 반 박자가 느리고 왼쪽·오른쪽 방향 맞추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활달한 그녀가 흥을 돋운다. 어쩌다 한 번씩 함성을 질러야 할 때 소리가 나지 않아 애매하게 앵앵거리곤 했는데, 오늘은 톤을 더 높여 질러 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속삭이듯 내 목소리는 겁을 먹는다. 나와는 달리 툭 트인 목소리로 시원하게 여음을 넣는 그녀가 고맙고 예쁘다. 그 구령에 따라 집중해 본다. 영차영차 열심히 하던 차에, 느닷없이 찬물이 후루룩 끼얹어진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대? 동작이나 따라 할 생각을 해야지, 왜 먹따구리처럼 짖어 대 ~~!!!”

일흔다섯, 왕언니의 지청구에 우리는 모두 얼음이 되었다. 언니의 심기가 불편한가 보다. 작달막한 키에 입술엔 다홍색 문신, 눈썹도 까맣게 문신으로 그려진 언니다. 꾹 다문 입술과 작고 날카로운 눈매 속에 숨겨진 매서움을 보니 아마도 그녀의 마음속 불편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었음이리라.

구령을 넣던 그녀는 큰 눈에 눈물을 담고 꾸역꾸역 동작을 이어 가다가 끝내 나가 버린다. 회장님도, 주변 언니 두 분도 따라간다. 다행이다 싶다. 위로해 줄 어깨가 있으니.

다시 에어로빅은 시작되고, 우리는 애써 불편한 그 일을 덮는다. 일흔 넘은 나이로 압도하는 신여사 왕언니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가진 마흔의 그녀도 귀엽게 보인다. 왜일까?

귀여운 그녀 2

탈의실 거울 앞에 입을 옷가지들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다. 제사상에 음식을 차려 올려놓듯이 드라이기와 빗, 갈아입을 속옷 세트와 야들야들한 원피스, 덧신까지 한 상 차려져 있다.

나는 그곳을 피해 구석으로 가서 불편한 마음을 정리하며 화장을 한다. 저것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당장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좁은 화장대를 차지해 놓고 씻으러 들어갔나 보다.

한참 후, 샤워장에서 한 여인이 나온다. 아리잠직한 여인이다. 단정하고 칠십을 갓 넘겼을 정도의 나이로 보인다. 오랜 세월 책상에 앉아 생활했음직한 분위기를 풍긴다. 목소리는 아직도 젊어서 낭랑하다. 살금살금 걷는 폼이 아양을 떠는 듯 귀엽다.

그녀는 자신이 차려 놓은 옷가지를 입고 고상하게 화장을 마친 뒤, 차려 놓은 ‘옷상’을 치우고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탈의실을 나선다. 그녀가 공유 공간을 독차지한 행동이 조금은 얌체처럼 느껴져도, 그 정리된 고상함이 자기만족처럼 보이더라도 그녀 또한 귀엽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귀엽다. 에어로빅장에서 소리 높여 흥을 깨는 그녀도, 탈의실에서 자기만의 의식을 지켜내는 그녀도. 반쯤은 얄밉고, 반쯤은 사랑스러운 ‘그녀들이다.

살아간다는 건 언제나 그런 모순의 정원이다. 가시를 품은 장미가 더 붉게 피어나듯, 사소한 불편함 속에서도 사람은 제 빛깔을 드러낸다.

결국 인생이란, 조금은 불편해도 서로의 귀여움을 핑계 삼아 웃고 이해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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