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9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은 깻잎 쌈밥을 만들었어.
네가 새벽에 일어나 출근을 하면서 간단히 먹고 갈 수 있게 말이야.
깻잎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물기를 뺐어.
양파와 김치는 잘게 썰어 볶고,
기름기를 뺀 참치와 쌈장, 참깨, 들기름 등을 넣어서 한 입 크기로 주먹밥을 만들었어.
그것을 데친 깻잎으로 돌돌 싸면 끝이야.
이것은 엄마가 모악산에 오를 때 후닥닥 만들어서 간단하게 들고 다녔던 최고의 요리였지.
몇 년 전 네가 남미를 두 달간 여행을 했어. 엄마는 왜 위험한 곳을 가느냐고 말렸지. 기후는 물론 음식도 문화도 낯선 곳에서 고생할 너를 생각하니 짠했던 거야. 그러나 넌 단호하게 지금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며 강행했지. 그때 간간이 소식을 주던 네게 건네고 싶었던 음식이기도 해. 우리 한국의 맛을 한 입으로 느끼게 할 수 있는 음식이잖니.
지난번 제주로 가족여행을 갈 때, 비바람이 심하여 비행기가 네 시간이나 연착이 되었어.
제주에 내려서 점심을 먹으려던 우리 계획은 방향을 바꾸어야 했지.
기내식당은 이미 만원이었고 이동하기가 곤란했어. 나는 ‘혹시 또 몰라’ 하는 마음으로 새벽에 준비해 두었던 깻잎 쌈밥을 꺼냈어.
다들 "뭐, 이런 것을 다." 하면서도 아주 유용하게 먹었지?
그때 맛있게 먹던 네 모습이 사랑스러웠어.
어릴 때 네 귀엽고 천진난만했던 모습이 겹치더구나.
훗날 너도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으면 이런 음식도 만들어 줄 줄 아는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를 최고의 요리사로 인정해 준 아들아,
너는 어릴 적에 엄마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곤 했지.
친구집에 놀러 가서 야채 전을 먹었을 때,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표 빨간 부침개가 더 맛있어요.”라고 했다면서?
그 친구 엄마가 그 빨간 전이 뭐냐고 물었지.
잘 익은 김장김치가 들어간 김치 부침개였어.
할머니표 김장김치는 특별하지.
양념을 아주 최소화해서 깔끔하고 감칠맛이 있었어.
갓 담갔을 때보다 익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김치야. 그것을 넣은 부침개나 돼지고기찌개는 일품이 되지.
네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김밥을 쌀 일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있었지.
자주 야외로 나갔으니까. 그때마다 선생님들 김밥은 물론 친구들 것까지 준비할 때도 많았어.
엄마표 김밥이 워낙 인기였거든.
엄마는 미리 재료들을 준비해 놓았다가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말곤 했어.
먼저 소금을 넣어서 한 밥에 들기름을 넣어 볶아. 그 밥을 단무지, 우엉, 당근, 시금치, 계란지단, 맛살 등을 넣어서 돌돌 마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김밥. 그러나 맛은 흉내를 낼 수 없는.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그 김밥의 비결이 있었어.
뭘까? 네게 최초로 공개할게 후훗. 그것은 향기쌀이야.
백운 할아버지께서는 여든일곱,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손수 농사를 지으셔서 우리 육 남매들에게 보내주셨어.
향기벼는 다른 벼들보다 수확량이 적어서 일반인들은 그 벼농사를 기피했대. 그러나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맛있는 쌀을 주시려고 굳이 그 향기벼를 지으셨던 거야.
그 향기쌀로 밥을 하면 온 집안에 향기가 진동을 해.
단무지와 시금치, 오이 등 부재료도 농약을 안 한 무공해 신선 식품이었으니 맛이 있을 수밖에.
지금도 그때 너를 가르치시던 선생님들이나 우리 김밥을 먹어본 사람들은 얘기를 하곤 해.
그때 이후 그 김밥처럼 맛있는 김밥을 못 먹어봤다고.
오죽하면 네 아빠까지 김밥만큼은 엄마표가 최고라고 인정을 했을까. 다 할아버지 덕분인데...
요리를 좋아했던 아들아,
기억나니? 네가 다섯 살 때던가? 요리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빵이나 케이크 등을 만들었지.
그때마다 넌 굉장히 즐거워했어. 그래서 엄마는 집에서도 함께 요리를 하려고 시도했지.
네가 제일 좋아하는 통닭을 집에서 튀겼고. 버섯, 양파, 피망 등 토핑을 잔뜩 얹은 피자도 함께 만들었어.
건포도나 견과류를 넣은 식빵도.
한 번은 도넛을 만들었어. 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밀가루를 반죽해. 밥그릇으로 둥근 모양을 만들고, 다시 가운데는 병뚜껑으로 눌러 도넛 모양을 만들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워했어. 누나는 하다가 슬그머니 방에 들어가 책을 읽곤 했는데 너는 엄마 곁에서 조랑조랑 말을 걸며 그것을 튀기고 뒷정리까지 함께 했지. 어리지만 얼마나 든든하던지. 그렇게 잔정이 많고 다정다감했던 네가 해병대에 입대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아파왔어. 아빠랑 연애시절에 아빠를 이기자 부대로 보내놓고 매일 울던 때 하고는 또 다른 불안과 아픔이었어. 그러나 강화도, 백령도, 석모도, 대청도까지 근무하면서 끝없이 넓은 바다와 쏟아질 듯 내려오는 수많은 별들 속에서 외로움을 다스릴 줄 아는 사나이가 되어 돌아왔지. 더 이상 귀엽고 여린 아들이 아닌 기대도 될 어깨를 가진 어른이 되어 있었지. 그러나 십 킬로그램 이상 빠져서 제대한 네게 엄마는 엄마표 된장찌개를 비롯하여 통닭부터, 김밥, 피자 등을 여전히 만들어 주고 싶었어.
이제 네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으니, 의젓한 어른이지만 노파심에 앞서 걸어본 자로서 세 가지만 조언하고 싶어.
첫째, 정성껏 한 음식이 맛이 있듯이 사람도 정성으로 빚는 것이야.
깻잎 쌈밥을 만들 때 한 장 한 장 정성껏 싸야 모양이 고와지듯, 부부의 삶도 정성의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단다. 서로 존중하고 섬기려는 밑거름이 있어야 오래 행복할 수 있지. 먼저 물을 떠다 주고 먼저 숟가락을 놓을 수 있는 정성이 있기를. 그런 작은 실천이 모여야 삶을 단단하게 붙들 수 있어.
둘째, 익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김치처럼 사랑도 세월 따라 깊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렴.
처음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겠지만, 함께 겪는 시간과 어려움 속에서 비로소 깊은 맛이 날 수 있도록 인내하렴. 순간의 즐거움보다 오래 묵히는 인내와 신뢰가 사랑을 지켜주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힘이 들어가거나 위험한 일, 예를 들면 칼질을 한다거나 무거운 쓰레기를 치우는 것들은 네가 하렴.
셋째, 나눔은 삶의 향기를 더욱 오래, 그리고 멀리 가게 할 거야.
엄마표 김밥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건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었어. 나누는 기쁨이 전해졌기 때문이야. 너도 가정을 꾸리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거라. 네 이웃과 소외된 자들을 향한 작은 나눔이 큰 행복으로 돌아올 거야.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즐겁게 요리하던 어린 날의 모습처럼, 결혼이라는 새로운 삶도 적극적으로 즐기며 배워 가기를 바란다. 정성으로 관계를 빚고, 시간이 더해질수록 깊어지는 사랑을 맛보며, 나눔을 통해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렴.
그 길 위에서 너와 네 아내가 함께 지어갈 가정은 반드시 따뜻한 기여를 통해 아름답게 완성될 거라 믿는다.
사랑한다. 아들!
깻잎 쌈밥을 만들며
여름을 겪고 다가온 햇살이 사랑스러운 날에
너를 사랑하는 엄마가.
p.s 그런데 여자 친구는 있니?
애인은 언제 생기는 거니?
묻지 말라고 했지만, 궁금하면 십만 원 내놓고 말하라고 했지만...
#깻잎쌈밥 #아들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