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날에

by 아침햇살


2024년 2월 9일, 섣달그믐날이다. 점 하나를 찍는다. 언제나 진행 중인 내 인생에 점 하나를 찍는다. 미적거리며 망설이던, 뒤돌아보며 머뭇거리던. 해찰하며 뒷걸음치던 내 인생에 완성은 아니지만 한 걸음이라도 내디뎠음에 일단 점 하나를 찍어본다. 끝점이자 시작점을.


어렸을 때는 멀리 있던 친척들까지 모이는 설날을 마냥 설레며 기다렸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다렸다. 엄마가 몇 날 며칠에 걸려 뜨개질 한 셔츠와 관촌장에서 사다 준 바지나 양말을 장롱에서 꺼내어 펼쳐보고, 입어보고, 신어 보기만 하고는 다시 곱게 정리하기를 여러 날. 설날 아침이 그렇게 기다려졌다. 물론 시루떡을 비롯하여 부침개, 약과, 유과, 알밤 등 먹을거리가 많았으니 더없이 배부르고 등 따뜻한 설날이었다.

끝점을 찍는 섣달 그믐날의 풍경은 결혼 전과 후로 구별된다. 대가족이었던 친정에서의 그믐날은 자정 너머까지 부엌을 떠나지 못했었다. 엄마가 불린 쌀을 도구통에 넣어서 절굿공이질을 했다. 빻아진 쌀을 체로 치는 일은 내가 거들었다. 다행히 떡방앗간이 생긴 후로는 시간을 조금 절약할 수 있었다. 떡쌀을 맡겨 놓고 와서 배추 전을 시작으로 고구마 전, 명태 전, 육전을 부쳤다. 고사리나 토란대, 애호박등 묵나물과 홍합탕 준비가 끝나면 자정이 넘곤 했다.

설날 당일에도 차례가 끝나면 할머니께 세배드리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다과상을 차려야 했다. 친구들이 뭉쳐서 봉황산에 올라 야호야호 함성을 지르며 깔깔거릴 때도 나는 그 놀이에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이 이 집 저 집 세배하며 받은 백산, 유과, 눈깔사탕등을 윗뜸 양지바른 곳에 모여서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눌 때 왜 그렇게 부러운지. 무남독녀인 친구와 처지가 바뀌는 꿈을 꾸기도 했다.


결혼 후 시댁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단출한 식구였다. 아버님이 삼대독자였기에 찾아오는 친척이 없었다. 동네 어르신들은 노인정에서 일동 세배를 받았다. 설날에도 맞이할 손님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가볍고 개운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남편은 처가인 우리 집의 설날 풍경이 더욱 좋단다. 찾아오는 친척이 없어서 명절을 외롭게 보내다가 설날 하루 종일 여러 친척들과 담소를 나누고 윗방에서는 아이들이 윷놀이를 하고 아랫방에서 어른들은 화투를 치며 음주를 즐기는 시끌벅적한 문화가 다정해서 좋다고 했다. (옆에서 종일 떡국을 끓이고 다과를 준비해야 하는 수고는 모르는 것이다. )


시댁에서는 설날음식조차 간단했다. 제사를 드리지 않으니 격식을 따지느라 먹지 않을 음식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가 먹을 음식들, 떡국을 기본으로 꽃게 찌개나 도라지, 더덕구이, 시금치나 콩나물 무침, 부침개까지 설날 음식 준비는 빨리 끝난다. 여유 시간이 있어서 문화생활을 즐길 수도 있다.

우리 온 가족들은 진안 읍내에 있는 영화관을 향했다. 김용균 감독의 영화《소풍》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제목을 접한 순간 천상병 시인의 시,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아흔둘인 어머니의 마음이 다칠까 염려되었다.


영화〈소풍〉은 파킨슨병을 앓는 은심(나문희)과 골다공증을 가진 금순(김영옥)이 평생을 함께한 친구로 등장한다. 가족의 요구와 삶의 무게 속에서 지쳐가다 마지막으로 함께 소풍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 여정에서 첫사랑과 옛 친구들을 만나 추억을 되새기며 노년의 아픔과 덧없음을 체감하지만, 결국 예쁜 옷을 입고 김밥을 싸 들고 나선 마지막 소풍 속에서 삶의 존엄과 우정의 의미를 확인한다. 작품은 노년의 질병과 죽음, 가족과의 갈등, 그리고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소망을 잔잔하면서도 먹먹하게 담아냈다. 특히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숙제를 안긴다.


모든 것 다 주고 병만 남은 엄마들,

너무 잘해주어 더 나약한 자식들 ,

병을 안고 살면서 내색하지 않은 아버지,

절친과 함께 삶을 정리하고 마지막 소풍을 떠나는 두 여자,

다리가 아프고 허리는 더욱 아픈 그녀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막대에 지탱하면서 절벽에 선 그녀들.

남의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여생은 어찌할 것인가

또 나의 벼랑은 어디일까?

내 인생 끝나는 날, 나는 어찌할 것인가


돌아오는 길.

마이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더없이 외로워 보인다.

어머님과 함께 보는 영화여서

더욱 무거운 소풍이 되었음에 전환점이 필요한 우리는 풍경 좋은 찻집을 찾았다.

달큼하면서 묵직한 향을 가진 뱅쇼로 2024년, 끝점을 찍는다.

또 내일, 맑은 태양으로 시작점을 찍을 우리를 위하여 건배한다.


삶은 크고 작은 점들의 연속이다. 그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그림이 된다. 그 그림이 완성될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인생’을 본다. 중요한 것은 끝점이 아니라, 그 끝점을 찍기까지 이어진 수많은 작은 점들이다.그 점들이 제 자리에 찍혀야 끝점도 아름답게 찍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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