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언니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가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피식 웃음이 난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라 하셨다.
부끄럼 많은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 땅속으로 숨어들고 싶었다.
떠오르는 노래가 없던 나는 늘 대청마루에서 큰언니가 흥얼거리던 곡을 구슬프게 불렀다.
큰언니와 친했던 선생님은 언니를 만나, 아이 앞에서 동요 좀 부르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큰언니는 내 생애에서 가장 먼저 만난 음악 선생이었다.
큰언니는 전쟁의 아이였다.
1949년 9월,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엄마의 몸조리가 끝나고 묵신행(혼례를 치른 뒤 친정에서 일정 기간 살다가 시가로 들어가는 것)을 했다. 본가로 들어와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며 6·25 전쟁을 엄마의 등에 업혀 보냈다 한다.
아래로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 엄마가 들과 산으로 뛰며 삶을 건사하는 동안, 큰언니는 한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인지 내 어린 기억은 엄마에 대한 것보다 언니와의 추억이 더 많다.
나는 친구들보다 한 달 늦게 학교에 들어갔다.
친구들이 받아온 노란 빵이 부러워, 그 맛을 보기 위해 아버지를 졸랐다.
빵 한 조각 때문에 들어간 교실이었지만, 그 안에서 즐겁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언니 덕분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언니는 나를 윗목에 앉히고 산수와 글자를 가르쳐 주곤 했다.
책과 공책이 귀했던 시절, 언니의 눈빛과 손길이 나의 첫 교과서였다.
큰언니는 낭만의 사람이기도 했다.
토요일 2교시가 끝나면 서둘러 조퇴하라고 했다.
하루에 한 대뿐인 버스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 손을 잡고, 언니는 내 손을 잡고 운일암반일암의 기암괴석을 보았고,
남원 이모할머님 댁을 찾았으며,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의 거리도 밟았다.
주말이면 마을을 돌던 사진사에게 나를 단장시켜 사진을 찍게 했다.
숯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머리를 곱슬거리게 말아 주고,
아카시아 줄기를 말아 올려 소녀의 머리를 꽃처럼 꾸며 주던 손길,
그 손길은 내 삶에 작은 빛을 달아주었다.
예배당 풍금 앞에서,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 말간 얼굴로.
그 모든 장면은 지금도 언니의 웃음과 함께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 언니는 다시 엄마의 엄마가 되었다.
고관절 수술과 장경색으로 누운 엄마를 모시겠다며,
평생의 삶터를 접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여든을 넘긴 형부와 함께 농사일을 배우며, 엄마의 성화를 달래느라 밭으로 나갔다.
고구마를 심고, 마늘을 심고, 깨를 심었다.
엄마 곁을 지키는 일, 엄마가 남긴 집을 지키는 일이 언니의 또 다른 운명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떠나셨다.
그 빈자리를 언니가 메우고 있다.
방에 들어서면 엄마의 그림자가 스치고,
장롱을 열면 여전히 엄마의 냄새가 배어 있다.
화단에서도, 장독대에서도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워 몸살을 앓는다.
그럼에도 언니는 떠나지 못한다.
“땅을 놀리지 말고 농사를 지으라.”
엄마의 유언 같은 말씀이 언니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수없이 넘어지고도 다시 일어서며 걸어온 큰언니.
당신의 삶은 언제나 다른 이의 짐을 대신 짊어지느라 고단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당신이 하루라도 꽃처럼 활짝 웃는 날을 맞는 것.
당신의 얼굴 주름 사이에 햇살 같은 미소가 머무는 것.
사람의 인생은 누구나 자기 몫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누군가의 딸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이의 어머니가 되고,
누구는 동생이면서 동시에 선생이 된다.
큰언니의 삶은 그 순환의 고리를 온몸으로 증명한다.
사람은 받은 사랑만큼 사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낸 사랑만큼 살아지는 것일까?
그 사랑은 피난길에도, 글자 한 자를 가르치던 손길에도,
밭에 심은 고구마 싹에도 깃들어
세대를 넘어, 땅과 사람과 기억 속에 고요히 이어진다.
나는 안다.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은 화려한 무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서 묵묵히 짐을 나누고,
생의 무게를 감싸 안으며,
끝내 한 송이 꽃처럼 웃어주는 그 얼굴에 깃든다는 것을.
문득, 오래된 그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예순 명이 넘는 친구들 앞에서, 부끄럼 많은 아이였던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며 얼굴이 화끈거렸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 뱃사공은 언니이고,
그 님은 바로 우리 가족이다.
언니는 평생 노를 저어 가족의 삶을 건네주었고,
그 강물 위에서 우리 모두를 싣고 오늘에까지 데려왔다.
당신은 내 생애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이며,
가장 깊은 강물이고,
끝내 나를 이 땅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한 첫 노래이다.
이제 나는 빈다.
험한 물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를 저어 온 당신의 인생이,
마지막에는 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고단했던 세월이 고스란히 꽃으로 피어나
당신의 미소 속에서 빛나기를.
참으로 고생한 당신,
이제는 당신이 웃을 차례다.
그 웃음이 강물 위의 햇살처럼 반짝이며
당신의 남은 날들을 따뜻하게 채워가기를
나는 오늘,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