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가지치기를 잘해야

곁님 단상

by 아침햇살


가을의 끝자락이다. 골짜기를 훑고 내려온 바람이 벌써 얼음 냄새를 풍긴다. 곁님은 그 바람을 맞으며 블루베리 나뭇가지를 치고 있다. 무릎을 꿇은 그의 손끝에는 신중함이 묻어 있다. 가지를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잘라낼 자리를 찾는다. 이따금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아기들이 한잠 자고 나면 훌쩍 크듯, 누에가 한잠 자고 나면 허물을 벗고 탈바꿈하듯, 이 묘목도 겨울잠을 잘 자야 훌쩍 자란단다.


블루베리를 처음 심은 해에는 아깝고 안쓰러워서 차마 가지를 자르지 못했다. 보글보글 피어난 꽃송이들도 따내기가 아련해 그냥 두었다. 결국 첫해 농사는 실패했다. 너무 잔가지를 많이 남겨서 영양분이 흩어져 열매가 튼실하지 못했단다. 그 실패를 통해 ‘성장의 진리’를 깨닫고 난 뒤로는 매몰차게 잘라낸다. 전지가위를 든 그의 눈빛에는 결의가 서려 있다. 잘라내야 할 부분을 찾아 적기에 정확히 자르려는 눈이다. 확실히 그렇게 관리한 해부터 블루베리 열매는 큼직하고 단단하며 달콤해졌다.


문득 생각한다. 내 인생에도 잘라내야 할 잔가지들이 많다. 늦기 전에 정리할 것들이 많다. 하루에 서너 잔 마시는 달달한 커피부터 줄이자. 새벽에야 잠이 드는 고질병도 고쳐야겠다. 빵이나 떡에 치우친 입맛도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새로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호기심도 다스려야겠다. 오늘부터는 오지랖도 조금 접어두자. 내 마음 한켠을 비우면 세상살이도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이것이 내 가지치기, 내 성장의 시작이다.


곁님이 정성껏 키운 블루베리는 이제 열다섯 해를 맞았다. 해마다 열매는 더 달고 단단하게 여문다. 입소문이 퍼져 단골이 늘고, 물량이 모자라 예약 판매를 할 정도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더니, 맞다. 우리 블루베리 역시 곁님의 숨소리와 손끝에서 자라는 듯하다.


블루베리는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하나하나 받들어 모시면서 따야 한다. 포도송이 따내듯 수확할 수만 있다면 오죽 편할까? 이것은 익은 알만 살포시 따야 한다. 그러니 투박한 곁님 손보다는 그래도 작고 보드라운 내 손이 일손이 된다. 이런 연유로 수확은 오롯이 내 담당이 되어버렸다. 유월 하순 뙤약볕에서 따야 맛이 좋다나. 수확할 때의 위로는 단 한 가지,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입 안에서 블루베리가 톡 터지는 순간, 달콤새콤한 향기가 머리를 환하게 한다. 나는 곁님에게도 한 알 먹어보라 권한다. 하지만 그는 수확하면서도 맛을 보지 않는다. 어쩌다 내 성화에 못 이겨 먹을 때면 가장 못난 열매를 골라 먹는다.

“상품은 선물용이고, 판매용이야.”

그의 말에 한 주먹씩 집어 먹던 내 볼이 붉어진다.

곁님은 자신이 정성껏 키운 것들에 유독 애정이 깊다. 키웠던 닭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지인에게 줄 때도 데려가는 과정을 외면한다. 그래서일까? 열다섯 해 동안, 강아지를 키우자는 내 제안에 고개를 젓는다.

“강아지가 농막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외로워, 그건 강아지에게 몹쓸 짓이야.”

멧돼지가 고구마 농사를 망치고, 지렁이를 잡아먹느라 파밭을 헤집어도 그는 전기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나 좋자고 동물에게 피해를 줄 순 없잖아.”

가지를 치고, 꽃송이를 따내며 냉철했던 그의 손끝에서 사랑이 자란다. 닭이나 강아지도 그는 가지치기를 적용하여 이기적인 욕심을 물리친다.

이른 봄에 가지를 치고 꽃이 피면 솎아내며, 여름이면 땡볕 속에서 열매를 따고, 늦가을이면 다시 가지를 치는 그 시간 속에 정성이 깃든다. 가지치기가 있어야 꽃이 좋고 열매도 실하듯, 인생도 필요 없는 것들을 잘라낼 때 비로소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곁님은 말한다.

“봄에 피는 꽃 중에 블루베리꽃이 제일 예쁘고, 단풍 중에도 이 나무가 최고야. 꽃을 따 주니까 나머지가 예쁘고 가지를 쳐 주니까 최고가 되는 거지.”

사람도 그럴 것이다. 내가 곁을 내주고 자주 생각하며 정성을 기울이면, 없던 정도 새록새록 생겨날 것이다.

인생은 결국 가지치기의 예술이다. 잘라낼 용기만큼, 다시 피어날 힘도 자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삶의 잔가지를 하나하나 손끝으로 어루만지며, 필요 없는 것을 떨쳐내고, 꼭 필요한 것에 마음을 쏟으리라 다짐한다. 이제 내 안의 열매가 더 단단히 여물어갈 것이다.










가을의 끝자락이다. 골짜기를 훑고 내려온 바람이 벌써 얼음 냄새를 풍긴다. 곁님은 그 바람을 맞으며 블루베리 나뭇가지를 치고 있다. 무릎을 꿇은 그의 손끝에는 신중함이 묻어 있다. 가지를 이리저리 어루만지며 잘라낼 자리를 찾는다. 이따금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아기들이 한잠 자고 나면 훌쩍 크듯, 누에가 한잠 자고 나면 허물을 벗고 탈바꿈하듯, 이 묘목도 겨울잠을 잘 자야 훌쩍 자란단다.


블루베리를 처음 심은 해에는 아깝고 안쓰러워서 차마 가지를 자르지 못했다. 보글보글 피어난 꽃송이들도 따내기가 아련해 그냥 두었다. 결국 첫해 농사는 실패했다. 너무 잔가지를 많이 남겨서 영양분이 흩어져 열매가 튼실하지 못했단다. 그 실패를 통해 ‘성장의 진리’를 깨닫고 난 뒤로는 매몰차게 잘라낸다. 전지가위를 든 그의 눈빛에는 결의가 서려 있다. 잘라내야 할 부분을 찾아 적기에 정확히 자르려는 눈이다. 확실히 그렇게 관리한 해부터 블루베리 열매는 큼직하고 단단하며 달콤해졌다.

문득 생각한다. 내 인생에도 잘라내야 할 잔가지들이 있지 않을까. 늦기 전에 과감히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하루에 서너 잔 마시는 달달한 커피부터 줄이자. 새벽에야 잠이 드는 고질병도 고쳐야겠다. 빵이나 떡에 치우친 입맛도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새로운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호기심도 다스려야겠다. 오늘부터는 오지랖도 조금 접어두자. 내 마음 한켠을 비우면 세상살이도 조금은 편안해질 것이다.


곁님이 정성껏 키운 블루베리는 이제 열다섯 해를 맞았다. 해마다 열매는 더 달고 단단하게 여문다. 입소문이 퍼져 단골이 늘고, 물량이 모자라 예약 판매를 할 정도이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더니, 우리 블루베리는 곁님의 숨소리와 손끝에서도 자라는 듯하다.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 수확할 때의 위로는 단 한 가지,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입 안에서 블루베리가 톡 터지는 순간, 달콤새콤한 향기가 머리를 환하게 한다. 나는 곁님에게도 한 알 먹어보라 권한다. 하지만 그는 수확하면서도 맛을 보지 않는다. 어쩌다 내 성화에 못 이겨 먹을 때면 가장 못난 열매를 골라 먹는다.

“상품은 선물용이고, 판매용이야.”

그의 말에 멋쩍게 웃는다. 한 주먹씩 집어 먹던 내 볼이 붉어진다.


곁님은 자신이 정성껏 키운 것들에 유독 애정이 깊다. 키웠던 닭은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지인에게 줄 때도 데려가는 과정을 외면한다. 그래서일까? 열다섯 해 동안, 개를 키우자는 내 제안에 고개를 젓는다.

“개가 농막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외로워, 그건 개에게 몹쓸 짓이야.”

멧돼지가 고구마 농사를 망치고, 지렁이를 잡아먹느라 파밭을 헤집어도 그는 전기 울타리를 치지 않는다.

“나 좋자고 동물에게 피해를 줄 순 없잖아.”

가지를 치고, 꽃송이를 따내며 냉철했던 그의 손끝에서 사랑이 자란다.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땡볕 속에서 열매를 따고, 늦가을이면 다시 가지를 치는 그 시간 속에 정성이 깃든다.

그는 말한다.

“봄에 피는 꽃 중엔 블루베리가 제일 예쁘고, 단풍 중엔 이 나무가 최고야.”


사람도 그럴까? 내가 곁을 내주고 자주 생각하며 정성을 기울이면, 없던 정도 새록새록 자라날까?


인생은 결국 가지치기의 예술이다.

잘라낼 용기만큼, 다시 피어날 힘도 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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