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봄은 쑥향에서 핀다

by 아침햇살


그녀의 봄은 뒷마당 은행나무 곁에서 우두망찰 서 있던 두 그루 산수유로부터 온다.
골목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고 초가지붕 처마에 매달렸던 고드름도 툭툭 떨어진다. 돌담 사이로 산들산들 봄바람이 날아들고, 산수유가 젖꼭지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면,

“저 산수유가 불을 달기 시작했구나. 이제 봄이야.”

그녀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병아리들은 둥구리에서 나와, 지난겨울 눈 속에 묻혀 있던 산수유 붉은 열매를 톡톡 쪼아댔다. 화단 여기저기에서 올록볼록 봄들이 기지개를 켠다. 봄은 언제나 그렇게 그녀의 마당에서부터 피어났다.


그녀의 봄은 쑥내음에서 무르익는다.
봄이 피어날 무렵부터 코끝을 간질이는 쑥향이 피부로 스며들고, 두 볼에 와닿는 바람이 온순해질 때면, 그녀는 어김없이 우리 기억 속으로 되살아난다. 그녀의 쑥개떡은 불후의 명작이 되어 봄날 밥상을 풍요롭게 했다.

멥쌀을 물에 담가놓은 그녀는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봉황산 언저리로 갔다.
그녀의 손바닥만큼 자란 쑥들이 나풀거리고, 옹기종기 한 무더기씩 모여 있어서 금세 한 소쿠리 가득 캘 수 있었다. 쑥을 다 캐고 돌아오는 길엔 아버지가 좋아하던 달래를 캐러 방향을 틀었다. 수시감나무 아래 돌틈 사이로 실파보다 가느다란 달래 한 줌만 캔다.
“씨를 말리면 내년엔 못 먹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남겨야 먹을 게 있다는 지혜를 몸으로 가르쳤다. 그래도 그때 나는, 지선이가 그 달래를 다 캐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며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불린 쌀을 절구에 넣고 찧었다. 쿵, 쿵, 쿵. 절구질이 리듬이 되고, 그 리듬에 봄빛이 묻었다. 채로 바치고 다시 찧고를 반복하다 보면, 함지박에 고운 쌀가루가 차르르 쌓였다. 그녀는 쑥을 짓찧어 쌀가루와 치대며 싱그러운 초록빛을 내었다. 그것을 손바닥에서 둥굴리며 나뭇잎 모양으로 만들고, 젓가락으로 잎맥을 그려 넣기도 했다.

가마솥에 김이 오르면 그녀는 조심스레 만든 것들을 올려놓았다. 쑥향이 부엌 가득 퍼지고, 진한 초록빛으로 변할 때까지 불을 지폈다. 다 익은 떡은 들기름을 묻혀 채반 위로 가지런히 놓았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씩 들고 골목으로 달려 나갔다. 손바닥 위의 따뜻한 쑥개떡을 한입 베어 물며 고무줄놀이를 하던 그 봄의 오후가 아직도 혀끝에 남아 있다.


이제 그녀, 나의 언니는 낯선 땅, 미국에서 산다. 봄이 오면 언제나 전화가 온다.
“쑥개떡이 먹고 싶어. 그 냄새만 맡아도 고향 생각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아.”
그녀의 봄은 이렇듯 국경을 넘어 우리의 기억 속을 걸어온다. 먼 이국에서도 그 향기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이란 결국, 한 줄기 향기로 서로의 마음에 피어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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