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것 같아. 후텁지근하고 먹구름이 낮게 깔렸어.
잠포록한 날씨에도 먼 길을 달려오신 구리 독서모임 회원들의 안전이 걱정되었어.
그분들의 안전한 여정을 위해 마음을 모으고 하루를 시작했어.
이번 만남에 대한 설렘은 두 달 전, 강의를 부탁받았을 때부터였지.
남원 방언도 어렵고, 방대한 역사 자료와 깊이 있는 풍습 연구, 거꾸로 읽어낼 수 있는 역사의식과 삶을 안내하는 철학, 꼼꼼한 묘사력까지 갖춘 <혼불>을 직접 낭독하고 있다니, 애정이 더 생길 수밖에 없었어.
구리시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혼불낭독모임’의 분위기가 기대되었지.
회원들은 최명희 문학관 지하 비시동락지실로 내려오는 계단에서도,
한쪽 벽에 걸린 글을 읽으며 한참 머물렀어.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지만, 이렇게 오래 글귀에 마음을 담는 사람들은 처음 봤어.
"가슴에 꽃심이 있으니 피고 지고 다시 피어"
"꿈의 꽃심을 지닌 땅 전주"
"꽃심은 꽃의 중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그 ‘꽃심’에 모두 꽂혔지.
한 시간 반 동안 <혼불>과 작가 최명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는 아픔을 느꼈다는 작가의 글쓰기 고통을 전달하다가,
“선생님, 책 소개해주세요”라는 수강생의 말에
14년간 혼불 읽기 전도사 활동을 하면서 정작 내 글은 못 썼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어.
갈팡질팡하는 사이 십 년, 이십 년이 흘러버렸지.
맞벌이를 해야만 생활이 유지되는 현실에 굴복하며 살아왔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와 딸로서, 누나와 동생으로서, 직분에 충실하려고
착한 척, 괜찮은 척, 즐거운 척, 무탈한 척 위장하며 살아온 내가 미웠어.
핑계를 대는 내가 가련하기도 했고.
내 꿈을 외면하고, 마치 내가 아니면 주변이 안 될 것 같은 불안과 오만으로
‘희생’을 남용했던 것도 돌아보았어.
더군다나 우쿨렐레, 시 낭송, 시작법, 운동, 노래 등 다양한 곳으로 오락가락하며
세월을 흘려보낸 것도 있었어. 한 우물을 파지 못한 거지.
오늘 아픈 네가 보내온 글을 보면서,
너만큼은 갈팡질팡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걷는 길에 등불을 켜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글쓰기를 미루지 않았으면 해.
지금이 적기라는 걸 깨닫고 몰입해 보길 바라.
글을 쓰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거든.
네 글은 읽는 이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그 나이와 공간으로 독자를 환치시키고, 함께 아파하며 위로받는 느낌을 받았어.
숨겨진 씨앗이 이제 움트나 봐.
캄캄한 동굴에서 답답했을, 홀로 자신을 키우느라 애가 탔을 너에게
이제는 햇살을 내려주길 바라.
다사로운 햇살 아래 몸을 말리며 일광욕을 하고,
맘껏 글을 쓰면서 성장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해야 네가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지금 내가 겪는 글쓰기의 갈증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너의 꽃에 물을 주고, 햇빛을 쏘이고, 바람을 견디게 한다면
너의 꽃심에는 위로와 평안, 기쁨, 뭉클함이 피어날 거야.
지금도 이렇게 반짝이는 눈빛을 가진 너이기에
나는 너를 믿고, 너의 길을 응원해.
그리고 언젠가 너도 스스로에게 속삭일 수 있길 바라.
“나는 잘하고 있어. 나는 충분히 아름다워.”
이제 너의 꽃이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피어나길.
그 마음으로 나는 늘 가까이에서 지지하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