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병상일기
엄마는 연세에 비해 식성이 좋으셨다. 소화력만큼은 자랑할 만했다.
다슬기국은 언제 드셔도 후루룩 소리를 내며 한 그릇 뚝딱 비우셨다. 비 오는 날이면 풋고추와 부추, 깻잎을 송송 썰고 애호박을 채 썰어 부침을 해드리면 “이게 최고여.” 하시며 두세 장씩 드셨다.
그런데 올여름이 너무 더웠을까. 여름 끝자락에 병을 얻으셨다.
소화가 안 되어 힘들어하시던 엄마는 다시 병원으로 향하셨다. 첫날만 해도 금세 나아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룻밤 만에 기운이 뚝 떨어지셨다.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아. 집으로 가자. 넓은 데서 편히 숨 쉬고 싶어. 갑갑한 병원에서는 하루도 못 있겄어.”
입술이 바짝 말라 가는데도 물 한 모금 못 마신다며, “집에 가면 시원한 식혜를 마시고 싶다”고 하셨다.
활짝 열린 마당, 능소화 피어오르는 돌담이 있고 아버지가 심어놓은 왕밤나무가 있는 곳. 돌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고 싶다며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리고 그리워하셨다.
그러나 복통은 더욱 심해졌고, 이윽고 ‘장경색’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수술실로 들어가야 했다. 아흔여섯의 나이에 큰 수술이라니.
담당의는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돌아가신다”고 했다. 우리는 망설였으나, 결국 수술을 선택했다.
십이지장을 포함해 소장은 50센티만 남기고, 대장도 일부를 잘라냈다.
패혈증과 폐렴, 단장증후군이 올 수도 있다는 설명을 들으며 마음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그날 우리는 점심도, 저녁도 잊은 채 엄마 곁을 지켰다.
밤 열 시,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에야 겨우 밥집을 찾았다.
대학병원 맞은편, ‘일등병 부대찌개’.
그 순간 오래전 기억이 스쳤다.
아버지가 폐렴으로 입원하셨을 때, 엄마는 우리 팔 남매를 이곳으로 보냈었다.
“밥 먹고 와. 자식이 배고프면 부모 마음이 더 허전혀.”
그렇게 자식 걱정하던 엄마가 이제는 병원에 갇혀 우리 걱정을 하고 계신다.
“내가 짐이 되는 건 아닌가” 하며 신음소리조차 참는 듯했다.
그날 밤 귀뚜라미 소리는 유난히 처량했다.
중환자실의 냉기 속에서 홀로 버티실 엄마가 가여웠다.
나는 엄마를 위로할 길이 없어, 노래 한 곡을 지었다.
엄마, 당신의 꽃
매화가 피면 알아요,
그대가 얼마나 추웠는지를.
섬진강을 따라 달려가던 길, 고목에 꽃이 피었어요.
나도 피어나요. 나도 피어나요.
노래하던 당신의 속삭임이 들려요.
그대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응답해 주오.
함께 피어나자던 엄마.
(랩)
“인생은 막차를 타도 괜찮아.
속도가 아닌 방향이 중요해.”
엄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지.
고목에 핀 꽃처럼, 늦게라도 피어나는 꽃이 되라고.
벼꽃이 피면 느껴요,
그대가 얼마나 거룩한 꽃인지.
들판에 벼꽃이 피었어요.
나도 피어나요. 나도 피어나요.
노래하던 당신의 속삭임이 들려요.
그대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응답해 주오.
함께 피어나자던 엄마.
(랩)
당신을 중환자실에 두고 우리는 밥을 먹었지.
뉴스를 보고, 잠도 자고, 꿈도 꾸었어.
그러나 믿었어요.
고목에 핀 꽃처럼, 당신도 다시 피어날 거라고.
천상의 별 하나, 당신을 응원하러 내려오네요.
우리 엄마, 권옥순.
며칠 뒤, 중환자실에서 나오신 엄마는 눈도, 입도 닫으셨다.
수술이 원망스러워서인지, 아픔이 너무 커서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침묵을 깨준 것은 바로 위의 노래였다.
‘소노’ 프로그램에 가사를 넣고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내가 “엄마, 이 노래 들려드릴게요.” 하고 불렀을 때,
당신 이름이 들리자 눈을 번쩍 뜨셨다.
그 뒤로 서서히 말씀도 하시고, 조금씩 드시기도 했다.
그러나 금식의 이유를, 그 깊은 마음의 문을
나는 끝내 열 수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을 알기에 더욱 속이 아렸다.
그것이 엄마의 마지막 금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픈 침묵 속에서도 당신은 여전히,
우리의 꽃으로 피어 있었다.
ㅡ이 글은 엄마의 수술 후 좌절의 순간들을 기록한 노래이자 기도입니다.
병실의 숨 막히는 공간에서 나는 오직 ‘살아 있어 주세요’라는 마음으로 노랫말을 쓰고 *소노*라는 프로그램을 빌려, 내 마음을 노래로 빚었습니다.
엄마는 이 노래를 들으며 눈을 떴고, 다시 나를 불러주셨습니다.
그 한순간의 기적이 내게는 생의 모든 이유이자 문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삶은 때로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이별을 품습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쓴 기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기 안의 ‘엄마’를 다시 한번 품어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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