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은
콧속에 싱그러움을 준다.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요동을 친다.
기뻐서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설날에 입던 새 옷,
처음으로 한 밥,
처음 사귄 친구,
첫 교복,
첫 운동화, 원피스, 필통, 노트...
그리고 새 학년이 되어서 받았던 교과서.
그 교과서에 해묵은 달력을 뜯어서 책옷을 입히던 순간의 설렘.
이 모든 첫 사물들에 대한 설렘 중에서 아직도 싱싱한 기억이 나를 종종 들뜨게 한다.
내가 초등학교 사 학년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두메산골에서 신문을 보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인 시절이었다.
다행히 동네 어르신 중 한 분이
조선일보?에 내 동시가 실렸다고 알려주셨다.
학교에서 쓴 글을 선생님이 보냈던 모양이다.
그 시가 상을 타고 신문에 실린 후에
서울에서 편지 여러 통과 선물 꾸러미가 왔다.
윤이 나는 하얀 종이의 노트 10권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 노트는 그때까지는 구경도 못한 거였다.
새롭고 빛나는 노트였다.
연필과 크레파스도 내가 가져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나를 몇 날 동안 들뜨게 했던 것들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에서 인기짱이 되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연필 하나를 얻으려고 친절을 베풀었고 크레파스를 얻어 그리려 더욱 살가워졌다.
하얗고 빛이 나는 노트는 그야말로 금쪽같이 여기며 아껴서 썼다. 일기장으로만.
연필을 돌려가며 정성스럽게 깎아서 끝의 뾰족함이 너무 날카롭지도 않고 무디지도 않게 적당히 깎았다.
그 연필이 샥샥샥 움직이며 써질 때의 감촉이 지금도 느껴진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때 쓴 일기장들이 설강에 보관되었다가 새로 집을 지으면서 모두 사라졌다.
이제 그때의 흔적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내 머릿속에 저장된 그때 선물을 보내신 중앙대학교? 학생이었던 문창남 선생님과
미국으로 유학을 가시면서 연락이 끊겼던 대학생이 있었다는 것.
그분들이 편지를 보내주시면서 격려했다는 것.
그중 문창남 선생님은 고향이 용담이었다는 것.
나의 키다리 아저씨들을 찾고자 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