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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햇살 Jan 21. 2023

초짜드막(잠깐 동안)

 멈춤. 허둥대며 살던 삶에 신호등이 켜졌다. 바람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잠시 비설거지를 할 때라고 몸이 경고음을 울렸다. 갑작스러운 ‘강제 휴가’는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깨닫게 했다. 미래를 걱정하며 오늘을 과부하 걸리게 했던 조바심의 결과다.


 여유와 쉼을 얻은 곳은 경남 하동의 솔숲이다. 조선 영조 때 광양만의 해풍과 섬진강의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숲이라는데 우람한 소나무가 그 역사를 말해준다. 하늘을 찌를 듯한 850여 그루의 소나무 숲. 귓가에 내려앉는 솔바람 소리가 푸르다. 향긋한 솔향은 미세먼지로 뒤덮인 폐를 시원하게 씻어준다. 두 눈이 새벽바람을 만난 듯 말갛게 뜨인다. 더군다나 뜻밖의 선물, ‘하늘거울’을 만나 설렘을 얻었다.


 하늘을 담아낸다고 해서 하늘거울이란다. 거울을 눈 아래 대고 걷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발에 힘이 들어가고 허방을 걷는 느낌이어서 자꾸만 비틀거린다. 발에서 힘을 빼고 천천히 이동하라는 숲 해설사의 말을 듣는 순간 이태 전에 수영을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물을 무서워하는 터라 잔뜩 긴장된 나는 물에 뜨는 것도 힘들었다. “힘 빼!”라고 혼내는 소리에 오히려 힘을 싣게 되고 허우적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몸이 서서히 떠오르고 팔에서도 힘을 빼내니 스르르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허둥대며 사는 것은 욕심이 과한 이리라.


 이전에는 계단을 오르거나 산책과 운동을 할 때, 쇼핑할 때도 서두르는 습성이 있었다. 죽마고우를 만날 때조차도 친구가 늦게 나오면 내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아서 불편했다. 어쩌다가 TV를 볼 때면 그 시간이 아까워서 뜨개질이나 다림질, 운동을 하면서 봐야 마음이 놓였다. 그러다 보니 밥 먹는 시간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숙제하듯 서둘렀다. 여유 없이 나를 긴장 속에 가두어 놓고 살았다. 내일이 오기도 전에 휘청거리며 현재를 멍들게 했던 삶이었다.


 하나, 둘, 셋. 심호흡을 하며 성급한 마음을 가라앉히니 오랜 시간 하늘을 향해 오르던 소나무 가지가 내려와 있고 올려다보기만 해야 했던 하늘도 성큼 다가선다. 가느다란 잎사귀들의 부스럭거림, 하늘의 숨소리까지도 들릴 것 같다. 사물도 이렇게 세심한 눈으로 보면 평소에 놓친 것까지도 보이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랴. 초짜드막(잠깐 동안)만큼의 시간이라도 상대에게 마음을 주며 인사할 수 있다면 그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와의 만남에 잠깐의 시간을 허락하여 기울인다면 내면에 숨죽여 울던 낙심도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몇 발짝을 더 옮겼다. 나무둥치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고 나뭇가지에 부딪히는 것 같아서 주춤거린다. 거울 속에 비친 허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데 잠깐의 시차가 발생한 것이다. 시차를 시차가 아니게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적응할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을 허락한다면 서먹함도 우물거리거나 두려움에 떠는 것도 없어질 것이다. 인생살이에서도 타인에게 마음 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그와 나 사이에 교집합을 만들 수 있도록 내어줌의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늘거울을 보며 마음을 적시는 소리에 귀를 모았다. 묵묵히 자신의 뿌리를 내려가면서 273년간 방풍림의 소임을 다하는 장엄한 속살거림이 들려온다. 나무의 뿌리는 나뭇가지가 커나가는 형상대로 뻗어 나간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도 불평하지 않고 지상으로 뻗어 오르는 그들을 위하여 영양분을 뿜어 올리는 밑 작업이 없다면 지상의 웅장함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서두르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내면의 속살을 채우기 위해 조용히 종을 울리고 있었을 과정을 생각하니 나만의 성공을 위해 질주해 온 내 삶이 가벼워 보였다. 어둠이 있기에 별이 빛날 수 있듯 배경이 되어주는 가족과 이웃, 스승과 친구의 응원이 있었기에 내가 윤슬의 반짝거림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송림을 빠져나와 섬진강 가에 앉아 하늘거울을 눈 아래 댄다. 거울에 매지구름 한 조각이 걸려있다.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어 넓은 벌판의 이미지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하늘은 더 가깝게 느껴지며 내가 그 속에 들어가 앉은 골방 같은 느낌이 든다. 나만 앉을 수 있는 곳에 내가 미처 보지 못했고 만지지 못했던 하늘이 선물처럼 안겨있다. 내가 나를 만나는 곳, 깊이 생각하고 나를 관찰할 수 있는 나만의 골방. 그곳에서 지친 내 영혼을 위하여 행장을 풀어내고 싶어 진다.


 무장 해제된 상태의 휴식은 평온이다. 요가의 한 동작인 사바사나(송장자세) 의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안락함과 같다. 온몸에서 힘을 빼낸 후 움직임 없이 생각도 잠재우고 고요에 침잠하다 보면 어느새 잠까지 불러올 수 있는 평안함에 머물게 된다. 잠시 긴장을 해제시킨 후 얻을 수 있는 보상치고는 과분한 것이다.


 소나무 가지처럼 내 오십 대의 포물선도 굴곡이 많았다. 직선으로 마냥 달려가지 못하고 뜻밖의 장애물에 막혀 뒷걸음질하고 있지만, 잠시 균형을 잃은 내가 외롭거나 초라하지 않다. 문득 뒤돌아보면 너무 예뻐서 슬픈 노을처럼 나의 중년도 영글어가고 있겠지. 몸이 말을 안 듣는 것을 탓하지 않으련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키고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 듯, 내게 온 이 아픔이 나를 지키고 명품으로 만들어줄 것임을 믿는다. 삶이란 롤러코스터임을 알기에 내려감을 두려워하지 않으련다. 다시, 초짜드막(잠깐 동안) 올려다본 하늘에 면사포구름이 유유히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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