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오염되는 과정

선함은 왜 약점이 되는가

by 간극

선.

나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믿지 않는다.


인간은 선하거나 악해서 움직이는 존재라기보다,

살아있는 생명으로서 이미 어떤 방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자식과 약자를 향한 마음은

도덕이라기보다 생명 자체에 가까운 반응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 부모가 선한 인간이라는 보장은 없고,

동물이 새끼를 돌본다고 해서

그 모든 행동을 선이라 부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선과 악을 성질로 나누기보다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더 중요하게 본다.


어릴 적

내 과자를 지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커가며 그것을 나누는 것은 학습된 행동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선과 악을 배운다.


기질, 환경, 경험.

그 모든 것들이 얽히며

각자의 방식으로 ‘선함’이라는 형태를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세상은

그 선함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구조가 아니다.


강한 사람의 선은

여유에서 나온 선택이 되고,

약한 사람의 선은

버티며 지켜야 하는 고통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선하게 살기 전에

먼저 무너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포식자인 척해야 하고,

때로는 단단한 척해야 한다.


그 맞지 않는 얼굴을 쓰는 동안

내부에서 닳아가는 감정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된다.


더 위험한 건 그 다음이다.


세상은 종종

선함을 존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선함을 침범해도 되는 것처럼 다루고,

그 침범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 순간

선은 더 이상 방향이 아니라

소모되는 자원이 된다.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럴 자신도 없다.


다만

무엇이 선인지,

어떻게 살아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계속 묻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바란다.


선한 사람들이

자신의 선함을

약점으로 오해하지 않기를..


그것은

무너져야 할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방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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