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는 결심이 아니라 습관이다

멈춤 버튼은 늘 같은 손이 누른다

by 간극

우리는 늘 달리고 있다.

정확히는, 달릴 준비를 하는 데 온 에너지를 쏟는다.


TV 속 연예인의 근육이나 마네킹의 실루엣을 보며

우리는 신성한 의식처럼 ‘올여름’을 예찬하고 맹세한다.


그리고 곧장 무기를 수집한다.


단백질 보충제, 리프팅 장갑, 최신상 운동화.


장비의 택을 뗄 때의 쾌감은

마치 이미 목표치에 도달한 것 같은 환각을 선사한다.


우리는 장비가 도착하는 날

전장으로 향하는 투사처럼 헬스장 문을 연다.

오늘이 아니면 영영 시작하지 못할 것처럼.


처음 5분은 진심이다.

10분까지는 결심이 서릿발처럼 살아 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내 안의 ‘위대한 협상가’가 고개를 든다.


그는 세계 최고의 논리학자가 되어

나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지금 왼쪽 무릎 각도가 심상치 않아..

오늘은 수요일이니까 차라리 다음 주 월요일에

‘완전체’로 시작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운동보다 피부 컨디션이 더 시급한 거 아니야?”


그리고 마침내 치명적인 거절 할 수 없는

마지막 제안을 던진다.


“이건 포기가 아니야.

잠시 숨을 고르는 전략적 멈춤이지.”


그 달콤한 궤변에 항복하는 순간,

우리는 조용히 멈춤 버튼을 누른다.


기묘한 사실은

그 버튼을 누르는 손이

어제도, 그저께도 눌렀던

‘늘 같은 손’이라는 점이다.


포기는 결심이 아니다.

포기는 정교하게 설계된 습관이다.


우리는 포기를 매번 새롭게 선택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내면의 설계도가 이미

‘포기’라는 최단 경로로 깔려 있을 뿐이다.


의지는 화려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

습관은 소리 없이 멈추게 만든다.


자아는 그 습관을 기막히게 이용한다.


“이번 한 번만”이라는 정당한 명분을 씌워

비겁한 도망을 우아한 선택으로 포장한다.


교실 밖, 헬스장 밖의 세상도 똑같다.


무언가 시작하려 하면

주변에선 “지금도 충분하다”며 안주의 독을 타고,

회사에서는 리듬을 끊는 회식으로 발목을 잡으며,

세상은 나의 성장통을 ‘유난’으로 치부한다.


결국 나는 러닝머신 위에서만 뛰는 게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 사회적 좌표, 관계의 긴장 속에서도 나는 내내 전력 질주 중이었다.


숨이 차는 건 육체의 통증이지만,

시선을 견디는 건 영혼의 비명이다.


이때 자아는 다시 속삭인다.


그만하면 됐다고,

이제 내려와도 된다고.


하지만 우리의 본질적인 존재는 말이 없다.


대신 무의식이

‘죄책감’이라는 경고등을 켠다.


우리는 이미 방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습관은 숭고한 의지만으로 고쳐지지 않는다.


습관은 오직

더 단단한 반복으로만 덮어쓸 수 있다.


포기라는 낡은 경로를

‘지속’이라는 새로운 회로로 교체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멈춤 버튼을 누르기 직전,

그 손을 한 번만 가만히 들여다보자.


“아, 이 손이 또 왔구나.”


그 뻔뻔한 방문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버튼은 이전보다 조금 덜 눌린다.


포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나의 고질적인 습관임을 직시하는 순간,

우리는 이전보다

아주 조금 덜 도망치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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