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는 말보다 침묵으로 완성된다
서비스는 말보다 침묵으로 완성된다
칼국수집에 들어섰다. 가게 안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메뉴는 몇 가지로 나뉘어 있었고 우리는 각자 취향에 맞는 것을 주문했다.
그때 사장님의 목소리가 얹혔다.
같은 걸로 시키시면 안 될까요?
주방이 몹시 분주한 것도, 손님이 몰려드는 시간대도 아니었다.
그 말의 이유는 단순했다.
번거롭다는 것. 자신의 편의를 위해 손님의 선택을 조금 조정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잠깐 대꾸할까 생각했다..
메뉴판에 적힌 음식을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선택하는 일이 이토록 쉽게 타협되어야 할 문제인가 싶어 입가에 말이 맺혔다.
그러나 나는 굳이 뱉지 않았다.
사람은 가끔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참지 못한다. 특히 그 말이 자신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을 때는 더 그렇다.
문제는 그 순간의 솔직함이 상대의 기분을 어떻게 건드릴지에 대해서는 놀랄 만큼 무감해진다는 점이다.
불편은 솔직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함이 언제나 미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관계는 투명한 진실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많은 관계는 적절한 침묵과 유예, 그리고 굳이 꺼내지 않는 배려라는 비어 있는 공간 위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다.
예전에는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았다.
가게는 손님에게 어느 정도의 질서를 요구할 수 있었고, 손님은 그 편의를 공동체의 정이라는 이름으로 감수하곤 했다.
장사의 편의는 묵인된 권한처럼 작동했고, 선택의 조정은 자연스러운 협조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시대의 중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지금의 서비스는 말을 잘하는 기술보다 말하지 않는 기술에 더 가깝다.
손님을 설득하는 화술보다 손님의 기분을 불필요하게 건드리지 않는 감각이 훨씬 더 중요한 자질이 되었다.
구시대가 남겨준 장사의 관성적 혜택은 누리고 싶어 하면서, 정작 시대가 요구하는 서비스의 민감함에는 인색한 모습.
그 작은 어긋남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생각보다 길었다.
결국 서비스의 본질은 음식을 내오는 손의 속도가 아니라, 그 음식을 마주하는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덜 거슬리게 만드느냐에 있다.
음식은 한 끼의 식사로 소화되어 사라지지만, 상한 기분은 잔향처럼 오래 남는다.
그래서 장사에서, 아니 모든 관계에서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기술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할 말이 있어도 하지 않는 능력.
자신의 편의를 위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그 고요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