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설하는 순간 시작되는 파산의 연대기
비밀을 털어놓는다는 건
무당 앞에 내 사주를 펼쳐 놓는 일과 같다.
내가 공유한 비밀의 교집합 속에
내 인맥이 걸려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음식을 잔뜩 먹고도 배가 부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만큼
공허한 요행이다.
마음의 신뢰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내가 믿는 그가
내일 내 등에 칼을 꽂지 않으리라는 것,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비밀은
‘발 없는 말’보다 빠르게
내 천 길 속을 말없이 휘젓는다.
인간을 믿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비밀을 믿지 말라는 말이다.
비밀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것이 드러났을 때의 후폭풍까지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선불 거래다.
그 값을 계산에서 빼지 마라.
그건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벽에도 귀가 있고
문에는 입이 있다.
결국 비밀은 바람과 같다.
낮에는 바람을 타고
밤에는 어둠을 등에 업고
문틈 같은 작은 틈을 따라
어디든 스며든다.
우리는 지금
‘설마’라는 이름의 빈약한 패에
너무 많은 판돈을 걸고 있다.
차라리
그 판에 올라타지 않는다면
적어도
인생이 통째로 파산하는 꼴은 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