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오역에 대하여
인터넷에서 본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던 미용사가
“물 온도 어떠세요?”라고 묻자,
노곤함에 취해 있던 손님이
“무릉도원 좋아합니다.”라고 답했다는 이야기.
물 온도와 무릉도원.
자음 하나와 호흡의 차이가 빚어낸 이 작은 언어의 오류는
뜻밖의 웃음과 함께 우리를 전혀 다른 차원의 대화로 안내한다.
나에게도 비슷한, 그러나 조금 더 물리적인 엇박자가 있었다.
대전 목원대 근처에 급히 갈 일이 있어 택시를 잡아타고
“목원대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행길의 설렘과 택시 안의 소음이 뒤섞인 탓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엉뚱하게도
대전 보건대 앞에 내려져 있었다.
“기사님, 여기가 왜 보건대죠?”
“손님이 보건대 가자고 하신 거 아니었나?”
잠시의 정적이 흘렀지만
우리는 이내 서로의 귀와 입을 탓하며 껄껄 웃었다.
결국 요금을 반씩 나누는 평화로운 합의 끝에
나는 유쾌한 추억의 파편 하나를 얻고 다시 길을 잡았다.
두 이야기는 닮아 있다.
생각보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직선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주 작은 오해 하나가
출발점을 살짝 틀어 놓고
우리를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낯선 풍경 앞에
데려다 놓기도 한다.
처음에 바로잡으면
웃으며 지나갈 수 있는 가벼운 해프닝도
시간이 흐르고 속도가 붙은 뒤에는
서로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게 된다.
오해도 웃음으로 받으면 이해가 되고,
이해도 화를 담아 뱉으면 오해가 된다.
아마 인생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사건들 사이를 지나며
내가 의도한 ‘목원대’와
우연이 선물한 ‘보건대’를
끊임없이 오가며 살아간다.
완벽한 직항 노선은 없어도
가끔 잘못 내린 정류장에서 만나는
의외의 풍경이 삶의 채도를 조금 더 깊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요즘도 미용실 의자에 누워
온도를 물어보는 말을 들을 때면
슬그머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설령 지금 내 온도가
무릉도원이 아닐지라도,
이 작은 오해들이 모여
내 삶의 유머가 된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