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함은 미덕이 아니다.

나를 포기하는 일이다

by 간극

이미 본 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표를 끊었다.


상대는 나를 향해 “참 착하다”며 웃었다.

그 순간, 기묘한 불쾌감이 명치를 찔렀다.

칭찬이 아니라, 내 존재의 영토가 한 뼘 밀려나며 발생하는 ‘상실의 마찰음’이었다.


나는 정말 그를 배려한 걸까.

아니면 단지 ‘갈등’이라는 소음을 견디지 못해

자아를 음소거해 버린 걸까.


그때 느꼈던 불편함.

어쩌면 그것은 내 무의식이 보내는 가장 솔직한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스스로를 지우고 있다는 신호 말이다.


우리는 종종

착해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관계가 어그러지는 순간의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착함’이라는 마취제를 주입한다.


그래서 그 선택은

배려처럼 보이지만, 결국 회피였다.


돌아보니 나의 생은 늘 비슷했다.

설명하기보다 넘겼고,

표현하기보다 삼켰다.


그리고 그 비굴한 합의의 과정마다

나는 ‘착함’이라는 근사한 포장지를 덧씌웠다.


하지만 분명히 하자.

착함은 강자의 ‘선택’이지,

약자의 ‘체념’이 아니다.


나는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저 선택하지 못했을 뿐이다.


거절할 용기가 없었고,

미움받을 배짱이 없었을 뿐이다.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게 아니다.

자기 영토를 지킬 의지가 없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삶을 헌납하고 있을 뿐이다.


타인은 내가 허용한 만큼만 나를 대한다.

나의 침묵은 그들에게

‘침범해도 좋다’는 무언의 승인서와 같다.


인간이기 전에 우리는 동물이다.

이성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며 분식회계를 하기 전에,

이미 우리의 본능은 미세한 이질감을 보내온다.


털끝이 쭈뼛 서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 감각.

그것은 내 영토가 침범당하고 있다는

야생의 경고였다.


나는 그것을 뒤늦게 알았다.

내가 허용한 만큼

내 영토는 야금야금 잠식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침략의 잔해 위에

‘착하다’는 깃발이 꽂혔을 때,

나는 그것을 칭찬이라 착각하며 웃었다.


결국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내 영토를 지키겠다는 최소한의 의지조차 없이 건네는 유순함은

결코 선함이 될 수 없다.


거절할 수 없는 자의 긍정은

긍정이 아니라 복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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