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가라앉는 날에 대해서

by 간극

이유 없이 감정이 한도 끝도 없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밑바닥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침잠.

어딘가 고장 나서가 아니다.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의식은 지독하게 또렷한데,

몸은 악몽 속에 결박된 감각.

살아있음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 무감각함마저 예민하게 감각하게 된 탓일까.


그러다 문득,

길가에 핀 작은 잡초 하나에

이유 없는 미소를 짓는 순간을 마주한다.

거창한 의미는 없다.

그저 잡초의 생과 나의 실존이

‘존재’라는 사실 하나로 맞부딪힌,

그 찰나가 전부였을 뿐이다.


아마 인간은

하릴없이 그런 날들의 이유를 발명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존재는 지독할 정도로 평범하니까.

그 지독한 평범함을 견디지 못해,

우리는 매 순간 의미를 붙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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