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함이라는 독재

불편할 자유를 위하여

by 간극

알림.

그것은 내가 부재하는 세계에서 나를 강제로 소환해 세상과 접속시킨다.

내가 보고 싶은지, 혹은 그 연결을 거부하고 싶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현재를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무의식이 세계를 먼저 점유하듯,

알림 역시 나의 허락 없이 내밀한 고요의 구획을 선점한다.


알고리즘이라는 정교한 설계자는

이미 나보다 더 나를 닮은 디지털 분신을 만들어 놓고,


그가 탐닉할 만한 세계를 미리 차려놓은 채

나의 엄지손가락이 닿기만을 기다린다.


편리함은 언제나 어딘가의 불편을 담보로 가져온다.

생활은 윤택해졌을지 모르나,

그 매끄러운 편리함이 우리의 사유 근육을 조금씩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예전엔 침을 묻혀가며 페이지를 넘기고,

종이를 구기고, 밑줄을 그으며

손끝의 마찰력으로 문장을 붙잡았다.


지금은 단 한 번의 터치로 수백 페이지가 매끄럽게 넘어간다.

퀴퀴한 종이 냄새의 아련함은

작은 화면의 빛 속으로 조용히 휘발되었다.


뇌는 넘기고, 구기고, 긋는 그 불편한 마찰을 통해

기억의 성을 쌓아가지만,

디지털의 매끄러움은 기억이 머물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나 역시

모나미 펜 끝에 맺힌 작은 잉크 똥을 닦아가며 문장을 벼리기보다,


키보드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주는 매끄러운 착각에 빠지곤 한다.

마치 더 나은 문장이 쓰이고 있는 듯한,

편리함이 만들어낸 감각의 착시다.


그래서 가끔은 의도적인 불편을 다시 삶으로 초대해야 한다.


알림에 의해 호명되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나를 부르는 삶.


알고리즘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존재가 아니라,

모나미 펜의 잉크똥을 닦아내듯

투박한 손맛으로 일상을 직접 빚어가는 삶 말이다.


편리함의 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다시 ‘불편할 자유’를 선택해야 한다.


편리함은 우리를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불편은,

우리를 다시 우리로 돌아오게 만든다.

작가의 이전글지독한 이별의 반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