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의 오류

편집된 세계라는 환상

by 간극

문을 열면 불이 켜진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다.


문이 닫혀 있을 때도 그 안은 늘 같은 밝기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닫힌 상태의 냉장고’를 본 적이 없다.


관측되지 않은 시간 속에서 그 안이 어떤 어둠을 품고 있는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의 의식에는 언제나 ‘불이 켜진 냉장고’라는 상태가 보관되어 있다.


이것은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 인지적 편의다. 확인할 수 없는 공백을 하나의 상태로 접어두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오류가 냉장고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는 보지 못한 구간을 본 것처럼 이어 붙이고, 조각난 사실들을 끊기지 않은 흐름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지반 위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결론을 얹는다.

‘그럴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


확률이 높다는 이유로 다른 가능성을 소거하고, 연속적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단절의 구멍을 무시한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는 켜져 있는 순간과 꺼져 있는 순간만이 파편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 사이의 어둠을 우리는 단 한 번도 통과해 본 적이 없다.


우리는 단지 그 간극을 ‘개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채워 넣었을 뿐이다.


그래서 어떤 판단들은 기묘한 여운을 남긴다. 논리는 완벽한데 어딘가 찝찝한 상태, 결론은 내려졌는데 완전히 납득되지 않는 느낌.


그것은 우리가 보지 못한 구간을 임의로 삭제한 채 서둘러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상당수는 사실 정교하게 편집된 연속성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세계는 생각보다 더 많이 파열되어 있고, 인간의 의식은 그 불연속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존재하지 않는 선을 긋고, 목격하지 못한 어둠을 빛으로 오해하며 그 봉합된 결과물을 세계라고 부른다.


냉장고 문을 닫는 순간, 불은 꺼진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 세계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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