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스스로를 피해자로 유지하려 하는가

당신이 나빠서 피해자가 된 건 아닙니다

by 간극

인간은 자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보이지 않는 시건장치를 걸고 살아간다.

그 이름이 바로 ‘피해자’다.


이 장치를 거는 순간,

자아의 합리화는 자동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그 과정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관계의 실패, 능력의 한계, 이별의 고통 앞에서

인간의 자아는 늘 시험대에 오른다.

그리고 그 시험은 대개 잔인하다.

생각보다 훨씬 깊게, 빠르게 흔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한다.

무너지기 전에 말해버린다.

“연락 한 번 없는 사람을 기다리며,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는 그 순간처럼.”


나는 괜찮았다.

나는 잘못이 없다.

나는 피해자일 뿐이다.


이 문장들은 거짓이라기보다

자아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최소한의 방어다.

붕괴를 지연시키는 마지막 장치에 가깝다.


물론 정말로 우리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책임의 진실보다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다.


피해자라는 가면은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다만 한 가지는 알아야 한다.

그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존재가 다음 단계로 이동하려 한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피해자는 정체성이 아니라 상태다.

잠시 머무는 것은 인간적이지만,

그곳에 오래 머무르면

성장은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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