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분노를 느끼기 전에 이미 휘둘리고 있는가
오늘도 우리는
타인과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 앞에서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의 반응 속도로 살아간다.
분명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지만,
그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감정을 컨트롤하라고.
마음을 비우라고.
하지만 이 말들은 대부분
분노가 이미 몸을 점령한 뒤에야 등장한다.
분노는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건 판단이라기보다
본능적인 감각의 발화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늘 늦는다.
분노를 느끼고,
말을 내뱉고,
행동을 저지른 뒤에야
비로소 ‘후회’라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분노에는
아주 짧은 빈틈이 하나 있다.
처음치고 올라오는 분노는
단 한 번의 멈춤으로
이미 다른 성질로 바뀐다.
그 한 번의 멈춤이 만들어내는 것은
‘참음’이 아니다.
분노의 밀도를 낮춘
잔여분노다.
이 잔여분노는
더 이상 나를 끌고 가지 못한다.
대신
이성이 끼어들 수 있는
아주 얇은 틈을 남긴다.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은
의외로 과장된 말이 아니다.
일상에서는
단 한 번의 ‘인’이면 충분하다.
그 한 번의 멈춤이
오늘의 나를
분노의 노예로 남길지,
분노를 다룰 수 있는 존재로 만들지
갈라놓는다.
당신은 오늘도
코르티솔의 반응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그 반응을 알아차리는 쪽에 설 것인가.
분노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그 주인이 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