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차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는가
오늘도 신호대기 중,
어김없이 크락션 소리가 울린다.
고작 1~2초 남짓한 정적 앞에서
사람들은 마치 육상선수처럼 반응한다.
이상한 일이다.
길을 걷다가, 줄을 서다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는
좀처럼 재촉하지 않는다.
기다림은 일상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차 안에만 들어가면
기다림은 참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빨리빨리 문화’ 때문이라고.
물론 그 설명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즉각적인 분노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나는 그 이유를
사회적으로 허용된 우월감,
그 짧고 안전한 착각의 형태에서 본다.
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과 차를 동일시한다.
특히 크고 좋은 차일수록,
그 동일시는 더 쉽게 일어난다.
차 안에 들어간 순간,
나는 보호받고 있고,
익명이며,
조금은 더 강한 존재가 된다.
그래서 신호대기 중 멈춘 앞차는
단순한 ‘기다림의 대상’이 아니라
내가 가진 속도와 권한을
가로막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크락션은 부탁이 아니다.
항의도 아니다.
그것은 잠깐 동안 허용된
권한의 행사에 가깝다.
이 장면은 어릴 적 기억과도 닮아 있다.
망토를 두르고 가면을 쓰는 순간,
아이들은 히어로가 된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자기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다.
차 안의 우리는
어쩌면 그 히어로의 연장선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파란 불인데 움직이지 않는 앞차를 향해
크락션이라는 단죄를 내린다.
나는 오늘도
그 버튼을 누르고 싶어지는 순간과 싸운다.
그 싸움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보다 커졌다고 착각하는 순간과의 싸움이다.
기다림이 사라지는 그 짧은 찰나에,
우리는 얼마나 쉽게
자기 자신을 벗어나 버리는지,
그걸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