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괜찮다’는 말을 가장 위험한 순간에 쓰는가

무너지기 직전, 사람이 스스로에게 건네는 마지막 언어

by 간극

살다 보면

차라리 쓰러지는 게 나을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이별, 해고, 실패.

두 발로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날들이다.


그런 순간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말한다.

“괜찮아.”


실상은 전혀 괜찮지 않다.

그 말로 돌아선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무너진 일이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위기의 순간마다

이 말에 위로받고,

또 이 말로 서로를 위로한다.


왜일까...


‘괜찮다’는 말은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순간,

사람이 스스로에게 붙잡는

최후의 보루에 가깝다.


포기하고 싶은 자신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

그때만큼은

다른 어떤 말보다

이 한마디가 먼저 나온다.


나는 이 말 앞에

늘 생략된 문장이 있다고 느낀다.


“너는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이 일로 스스로를 절벽에서 밀어내지 마라.”

“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더 갈 수 있다..”


‘괜찮다’는 말은

현실을 부정하는 위로가 아니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우리가

끝내 숨을 놓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말에 가깝다.


그래서 이 말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쓰인다.

그리고 그만큼,

사람을 다시 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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