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을 말하지 않았던 우리의 책임에 대하여
고등학교 시절,
나는 4인실 기숙사에서 지낸 적이 있다.
무협지와 판타지에 빠진 친구,
전교 1등이던 친구,
게임에 몰두하던 친구,
그리고 생각이 많은 나.
일부러 섞으려 해도 쉽지 않을 만큼
각각 다른 네 명이 한 방에 모였다.
기숙사 규칙상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었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는
그날을 위해 조금씩 돈을 모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약속 같은 것이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시작됐다.
게임을 좋아하던 한 친구가
치킨값을 내지 않기 시작했다.
한 번쯤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게임에 돈을 썼을 수도 있고,
사정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두 번, 세 번 반복됐다.
불편함은 말보다 먼저 방 안에 스며들었다.
게다가 이상한 일도 함께 시작됐다.
우리는 늘 콜라를 반 이상 남겼다.
그런데 아침이 되면
콜라는 늘 비어 있었다.
마신 사람은 없다고 했다.
치킨데이는 다시 돌아왔고,
그 친구는 이제 자연스럽게
아무 말 없이 치킨을 먹고 있었다.
나머지 셋은
불만보다 체념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날도 콜라는 많이 남았다.
나는 그날 잠을 자지 않았다.
정황이 아니라,
확인이 필요했다.
이 불편함을 더는 미루고 싶지 않았다.
밤 11시,
12시,
1시.
불을 끄고 누워 있던 중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 친구가 일어나
콜라를 집어 들더니
두 번에 나눠 마시고
깨끗하게 비웠다.
그 장면을 본 뒤에야
나는 잠들었다.
다음 날,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제 일로 이야기 좀 하자.”
그 친구는 말했다.
갑자기 밤에 깨서 생각이 안 났다고.
자기는 치킨을 먼저 먹는다고 한 적도 없고,
우리가 준 줄 알았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명하게 풀어낼 만큼
나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
치고받을까 하는 생각도 스쳤지만
그건 생각으로 끝났다.
결국 우리 셋은
그 친구와의 관계를 끊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충격은
치킨이나 콜라 때문이 아니었다.
작은 공간에서
한 사람의 이기심이
어떻게 관계를 잠식하는지를
처음으로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정말 최선이었는지,
아니면 불편함을 말하지 않은 채
너무 오래 침묵해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관계는
큰 배신보다
말하지 않은 불편함에서
더 자주 무너진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