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는 책을 비판할 자격에 대하여
최근에 들은 말 중
가장 오래 남은 단어가 있다.
‘패션독서’라는 말이다.
책을 진득하게 읽기보다
인증을 위해 펼쳐두는 행위.
독서를 하나의 패션처럼 소비하는 태도를
비꼬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처음엔 고개가 끄덕여졌다.
읽지도 않을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은
분명 가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곧
이 질문이 따라왔다.
과연 나는
그 모습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패션독서의 연장선 위에 서 있었다.
경제력보다 과한 차,
자기 능력보다 큰 감투,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려는 복제품들.
읽히지 않는 책만이
유독 가식의 상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짝퉁과 허영에는 관대하면서
책 앞에서만
도덕적 기준이 급격히 높아지는 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읽지 않는 책을 펼쳐두는 건
지식에 대한 기만이라고.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책이 실제로 읽혔는지가 아니라,
왜 하필 ‘책’이었느냐는 질문이다.
패션의 대상으로
책이 선택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적어도 이 사회 어딘가에
독서가 여전히 가치 있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읽히지 않는 책보다
아무도 들고 싶어 하지 않는 책이 되는 쪽이
오히려 더 두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패션독서를 쉽게 비난하기보다
그 말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서게 된다.
우리는
읽지 않는 책을 문제 삼기 전에
무엇을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지부터
묻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