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은 의지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층위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by 간극

사람들은 말한다

의지가 약하기 때문에 작심삼일이 된다고.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말로, 우리는 자주 실패의 책임을 의지에게 돌린다.


하지만 한 번쯤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의지력의 유통기한은 훨씬 짧다는 사실을..


의지력은 소비되면 즉시 회복되지 않는다.

의지의 통제에 반하는 선택에 쓰인 의지는 더 빠르게 고갈된다.

처음부터 기준이 높고 불편한 작심일수록,

삼일을 넘기지 못하는 건 오히려 정상에 가깝다.


그래서 많은 결심은

의지로 버티는 형국이 된다.

그리고 의지는, 그 역할에 가장 취약한 도구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존재의 자극이 없는 작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떠올려보자.

갑자기 운동과 식단을 바꾸면 의지력은 급속도로 소진된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말을 듣는 순간,

그 자극은 존재의 층위에서 발화된다.

그때부터 변화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가 된다.


반면, 자극 없이도 꾸준히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운동이 원래 맞는 사람,

살이 쉽게 빠지는 사람.

이들은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성향이 다른 경우다.


이 서로 다른 층위의 현상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작심삼일”이라는 말로 묶어버린다.


그렇다면 답은 없는 걸까.

있다. 다만 번거롭고 반복적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강한 결심이 아니라,

중독된 자아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다.


운동복을 사기 전에,

정말 배가 고픈지,

정말 오늘이 최악의 컨디션인지,

처음 결심했던 마음과 지금의 욕구 사이에

어떤 괴리가 생겼는지를 묻는 것.


이 질문들은 빠른 보상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외면한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의지가 아니라 존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작심삼일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잘못된 층위에서 시작했다는 신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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