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라는 협박

우리는 언제부터 진심으로 결과를 요구하기 시작했을까

by 간극

살면서 우리는 늘 진심을 말한다.

친구를 사귈 때도 진심,

사랑을 할 때도 진심,

시험을 준비할 때도 진심.


돌이켜보면

우리는 단 한 번도

“이번에는 대충 했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항상 진심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는 정말 진심을 말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진심을 앞세워

좋은 결과를 요구하고 있는 걸까.


이만큼 했으면..

이 정도 마음을 썼으면..

이제는 보상이 따라와야 하지 않느냐는

말 없는 압박.


진심은 그 순간부터

태도가 아니라 조건이 된다.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결과를 담보로 한 협박이 시작된다.


이 마음은 매혹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위험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만큼 했으니 예외가 있어야 하지 않나.”


마치

맛있으면 0칼로리라는

그럴듯한 자기기만처럼.


하지만 진심이 아무리 크다 해도

진실은 거기에 면죄부를 주지 않는다.


진실은 생각보다 냉정하다.

수치적이고, 물질적이며,

지독하게 계산적이다.


진심으로

백만 원짜리 만년필을 들고

2와 2를 아무리 정성스럽게 써도

진실이 4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이렇게 속으로 타협한다.


이 정도 마음을 썼으니

이번만은 5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우리가 진심과 진실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기 시작할 때다.


진심은 태도의 문제지만

진실은 결과의 문제다.

이 둘은 닮아 보일 뿐,

결코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


진심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진실을 보지 않으려는 경우도 많다.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

우리는 틀렸다는 사실보다

“진심이었는데”라는 말로

스스로를 먼저 감싸버린다.

마치 그게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그래서 이제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내가 진심이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진실과 어긋나기 시작했는가.


그 지점을 보지 않으면

외면해도,

착각해도,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진심만 반복하게 된다.


진심은 충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그걸 아직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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